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38호)
일화 逸話
1. 걸인에게 속으신 일
대종사께서 어느 때에 인근 마을 주막을 지나시더니 어떠한 걸인 하나가 주막 벽 위에 써 있는 제갈공명의 시 「대몽수선각(大夢誰先覺)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우는가? 평생아자지(平生我自知) 평생에 나의 할일을 스스로 알겠도다.」라는 글귀를 큰소리로 낭독하는지라, 대종사께서 크게 이상히 여기어 그 걸인의 모습을 살펴보시니 의복은 누덕누덕 기웠고 온몸에 종기와 고름이 가득하여 누구든지 서로 가까이 앉기를 싫어할 만큼이 되었는지라, 대종사께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예로부터 도인이 혹 험상궂은 모습으로 나투어 가지고 인간 세상을 순시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 걸인이 시를 유심히 외우는 것이라든지 외모가 험상궂은 것이라든지 그 모든 것이 범상한 사람의 태도는 아닌 듯하다 하시고, 나아가 인사를 한 후 곧 술과 밥을 사 먹이시고 이어서 집으로 데리고 오셔서 며칠 동안 식사를 공양하고 대접을 극진히 하셨더니 후에 그 내용을 알고 보니 아무 요량없는 바보인 것이 판명되었다 한다.
2. 처사를 시험하신 일
또 어느 때에는 어떠한 처사 하나가 산속에 있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곧 사람을 보내어 초빙하였더니 그 처사가 먼저 대종사의 부친을 뵈옵고 말하기를 “나는 산속에서 공부하여 신통을 얻은 지가 이미 오래이라 귀하의 아드님이 만일 나를 좇아 공부를 배운다면 반드시 불가사의한 능력을 얻게 될지니 그 공부에 착수하기로 하면 먼저 귀하의 집에 사육하는 소(농우 農牛) 한 마 리를 사례(폐백 幣帛)로 주겠느냐.”고 하였다. 부친께서는 그 처사의 말을 믿고 장차 기르던 소를 주려 하시며 즉시 대종사를 불러 그 처사와 만나게 하시니 대종사께서는 접견할 즈음에 인사의 예를 차리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장유(長幼)의 구분으로 말하면 이제 마땅히 절하고 뵈올지나, 오늘 서로 만난 것은 보통 만남과 달라 마음이 서로 합할 때는 영원히 사제의 의를 맺기로 한 것인즉 선생의 가지신 포부와 능력을 이에 다 베풀어서 나의 신념이 생긴 뒤에 폐백도 드리고 따라서 사제의 예로서 뵈오리다.” 하시니 그 처사 처음 만남에 인사하지 아니함을 조금 불쾌히 생각하였으나 억지로 참고 말하기를 “나는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통령하여 신장(神將)을 능히 부르고 보내는 재주가 있으니 만일 원이 있거든 시험해 보라.” 하였다. 대종사 말씀하기를 “그러면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신장을 실지 구경케 하소서.”
처사 즉시 응낙하고 그날 밤부터 정갈하게 치운 방에서 자기의 평소에 이르는 주문을 큰소리로 외우는데 밤을 새웠으되 신장이 보이지 않는지라, 그 처사가 초조한 생각으로써 다시 말하기를 “이것이 아마 인근 마을에 초상이 난 집이 있거나, 혹은 아이를 낳은 집이 있거나,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이 방에서 전일에 혹 초상이나 해산 등을 지낸 듯하니 오늘 저녁에는 다른 새 방 하나를 정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대종사 생각하시되 ‘이것이 반드시 사술이며, 허무맹랑한 말이로다. 무슨 공부가 사람의 생사 있는 곳을 다 피한다면 그 어느 곳에 쓰게 되리오.’ 하시고 속마음으로는 이미 작파하였으나, 겉으로는 그 처사의 청한 바를 용인하여 다시 다른 새 방 하나를 정하여 주셨더니 그 처사 또한 밤새도록 주문을 외우되 신장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지라, 그 처사가 대단히 당황하고 부끄러워(황공참괴 惶恐慙愧) 그날 새벽에 대종사의 외출하신 틈을 타서 가만히 담을 넘어 도주하였다고 한다(월장도주 越墻逃走).
* 위에 기록한 일화 2편은 오직 한두 가지의 예만 든 것이니 제1절은 대종사의 도사 만나고자 하실 때 첫 번째 경험의 일이요, 제2절은 또한 그때의 많은 경험을 지내신 뒤 일이다.
대종사 20세 되시던 해 10월경에 부친상을 당하시니, 당시 가정 상황을 거론하면 대종사께서는 원래부터 다른 원을 품었으므로 가정사에 대한 주의가 없으셨고, 모친 유씨와 부인 양씨는 여자의 몸인 고로 또한 가산의 내·외무를 통제하기가 어려운 동시에 부친의 남은 부채가 정리되지 못한 바가 있으므로 그 유산(遺産)은 점점 소모되기 시작하여 불과 수년에 거의 탕진의 지경을 당하였다.(큰형과 동생은 집안의 양자로 가고 손윗형은 일찍 사망하였으므로 당시 집안 가장의 책임이 대종사에게 있었음.)
대종사께서 부친상을 당하신 뒤로는 생활에 대한 의뢰와 구도에 대한 후원을 하루 아침에 다 잃어버리게 되었고, 겸하여 늙으신 모친과 어린 처자의 생활 책임도 또한 대종사에게 오로지 부담되었으니 뜻 없는 살림과 경험 없는 고생에 그 고달픔이 어떠하였으리오. 이뿐만 아니라 오 년 동안이나 구하고 바라던 도사도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모두가 범상한 무리요 허위와 사술에 지내지 못하며, 정당한 진리를 찾을 곳이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대종사의 생활곤란과 마음고통을 아울러 받게 된 원인이다. 그리하여 22세 되시던 해에는 그동안 도사 만나고자 하는 생각도 차차 단념하시고 마음을 잡지 못하시고 한많은 세월을 보내시었다.
김선명 영광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