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은혜

‘(일원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은 원불교 가르침의 정수라고 하는 ‘일원상 서원문’의 첫 문장의 셋째 소절로서 일원의 세 번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로 대충 풀면 ‘일원은 하늘 땅, 부모님, 이웃, 법률’을 이루는 근본이고 원천이다’라는 말이다. 원불교에서는 이 네 가지의 은혜, 즉 사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지가 모든 생명을 길러주고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 이웃이나 법률이 없어서는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일원이 네 가지의 본원이므로 일원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는 신앙적인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25-06-02     한울안신문

 

인간이 ‘천지’ 은혜의 과학적 본질을 안 것은 놀랍게도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주는 ‘핵과 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 번호 1번인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많은 기본 원자로서 한 개의 핵과 한 개의 전자로 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우주 천지에 오직 이 지구에서만 ‘전자’가 운동한다. 다른 별에서는 핵의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받아 열매를 맺는 것, 우리가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도 전자 운동의 부산물이다. 자동차 역시 석유에 붙어 있는 수소의 전자를 이용하는 것이고, 태양전지 역시 햇빛 에너지를 반도체의 전자에 가두어 이용하는 것이다. 태양에서는 전자운동이 없다. 오직 수소 핵끼리의 융합만이 있을 뿐이다. 빛을 내는 수많은 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주의 별을 두 가지로 나눈다. 전자가 활발히 운동하는 한 개의 지구와 전자가 죽은 무한한 별들로 말이다. 원불교가 가르치는 천지은혜는 바로 지구에서만 일어나는 화려한 전자 쇼라고 말할 수 있다.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쓴 젊은 시인 윤동주는 별 하나 하나에 ‘페, 경, 옥’이라는 이국소녀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 별은 ‘전자가 죽어 있는’ 별이고 아무런 생명도 없는 별이다. 별을 헤는 시인의 마음이 살아있는 것도 화려한 전자쇼가 펼쳐지는 오직 이 지구에서뿐이다.
이 화려한 전자쇼의 화학식은,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본 듯한 간단한 식이 놀랍게도 전자쇼이고 천지은의 본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볍게 따라가 보자.
수소 두 원자가 산소와 만나서 짝짓기하면 우변의 물이 된다는 뜻이다. 독자는 이 짝짓기가 수소의 전자가 하는 운동이구나 하고 눈치챌 것이다. 수소의 전자는 산소의 전자보다 에너지가 조금 크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 수소의 전자가 자연스럽게 산소 쪽으로 조금 이동한다. 낮은 쪽으로 흐르는 물이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이 짝짓기에서 수소 전자가 잃는 에너지를 우리가 먹고 살아간다. 짝짓기가 끝나면 수소 두 개가 산소에 토끼귀 모양으로 붙게 된다. 이러한 물분자의 모습이 물의 성질을 결정한다. 물이 모든 것을 녹이고,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고, 지구 온도와 우리 몸의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모두 물의 성질, 아니 ‘수소 전자’의 쇼 덕분이다. 원불교 <성가> ‘물의 세상 만물은’에서는 이러한 성질을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한다.

생물은 이 짝짓기를 위해서 지구에 그득히 많은 탄소(특히 CO2의 모습으로)를 중매자로 이용한다.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여겨지는 탄소 말이다. 탄소는 수소를 그냥 가두기도 하고(메탄가스), 물로써 가두기도 한다(탄수화물). 식물은 이 CO2와 물을 흡수해서 ‘탄수화물(포도당)’이라는 열매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에서 얻는다. 식물은 ‘수소의 높은 에너지 전자’를 탄소에 가두는 전문가이다. 탄소동화작용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동물은 바로 이 탄소화물을 소화시켜 수소 전자의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가 과일의 단맛을 좋아하는 것도 수소 전자 에너지를 얻으려는 연애질이라고 할 수 있다. 

소화작용은 과일에서 수소를 떼어내는 과정이다. 수소는 세포 안의 미트콘드리아에서 산소와 만나 물이 되면서 에너지를 얻는 마지막 장소이다. 산소는 호흡하면서 얻는다. 만들어진 물은 오줌, 땀으로 배출된다. 이러한 전자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세포가 반란을 일으킨다. 암세포라는 형태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면 탄소가 기후변화의 원흉이라기보다 수소를 운반해 주는 은혜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이 탄소에 붙은 수소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CO2를 만드는데 있다. 넓은 우주의 오직 한 곳, 이 조그마한 지구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전자쇼가 지속될 수 있을까? 아마도 원불교의 천지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데에서만 해답이 있을 것 같다.

5월 30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