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이야기
성가 46장 청정법계 둘 아니니 성가 47장 임가신 뒤 세월은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의 하나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나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Uncertainty Avoidance)라 하고 그러한 상황이 심각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야기한다고 한다.
즉, 미지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는 것인데, 그 미지의 세계 중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의 역할 중 하나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여 현실 세계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니, 이 성가들 또한 그것과 관계가 있고, 성가 46장이 가장 그러하다고 하겠다.
‘법공’은 ‘법의 공양’이라는 뜻으로 원불교 천도 의식에서는 영혼 천도를 위해 음식이 아닌 법의 공양으로 영가의 해탈 천도를 발원한다. 대표적으로 천도법문, 독경, 설교 등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 해탈에 들기를 원하므로 법공양인 것이다. 그런데 성가 46장은 초재(初齋)에서 칠재(七齋)까지의 식순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입정에 이어 부르도록 하고 있음은 유의해야 한다.
성가 46장은 이공전 교무가 작사하고 이홍렬 선생이 작곡하였다. 6/4박자이고 악보에 ‘느리게’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이 성가의 분위기에 맞게 천천히 부르면 된다. 라단조로 곡을 시작하고 바장조로 마침은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로 생각되며, 첫 음이 좀 높은 감이 있으나 법공의 노래이니 정곡(情曲, 간곡한 정)을 생각하면서 부르면 되겠다.
성가 47장은 열반을 기념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어떠한 인연을 맺었든지 만나고 헤어짐은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슬픔과 한을 담아내고 있으므로 더 애틋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성가는 그러한 보편적 관계를 넘어선 영생의 스승님에 대한 사무친 정과 그리움을 달래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일원대도 선양하고 일원회상 이루자는 다짐을 담고 있으니 그 정곡이 더 사무칠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부모 또는 지인이라 해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추모의 마음’, ‘다시 그 향기’, ‘알뜰한 교훈’이라는 표현 등에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예전에서 제사에 대해 ‘열반인에 대해 추모의 정성을 바치는 것으로 두 가지 뜻이 있는바 하나는 숙세의 업장을 녹이고 도문에 들게 함이고 하나는 공덕을 추모하고 후생의 보본사업을 권장하기 위함’이라 하였으니 그 의미를 생각하며 부르면 더 간절할 것 같다. 성가 47장은 이공전 교무가 작사하고 김성태 선생이 작곡하였다. 4/4박자이고 단조의 조성이니 조금 느리게 부르면 된다. 두 곡 모두 가창상 난이도는 거의 없으므로 이 곡의 제정 취지에 따라 추모의 마음으로 부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교단적으로 추모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스승님들과 조상님들, 그리고 선배 제현께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잊지 말자. 그렇게 추모하고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의미가 이 성가들에 녹아 있다.
성가의 역사 5
원불교 성가는 원기47(1962)년에 40곡, 원기53(1968)년에 126곡, 원기75(1990)년에 162곡이 제정되었다. 원기84(1999)년의 자문판 성가 38곡을 제외하더라도 가히 엄청난 속도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2천 년 전의 문화와 현재의 문화는 그 성장 배경이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음은 인정해야만 한다. 현대문화적 견지에서 100년은 엄청난 시간이다. 단순히 성가의 숫자로 비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기 한국의 상황과 그 외 여러 요인을 감안했을 때 원불교 성가의 성장 속도는 결코 느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중성과 예술성이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내야 하는 것이 교단의 과제일 것이다.
원불교 성가가 갖는 역사성, 문학성, 예술성 등은 세계 어느 종교 음악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뿌리만 볼 수는 없다. 기둥도 든든하고 가지도 풍성할 때 큰 나무가 되고 큰 그늘을 가질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승원 교무 원광보건대학교 교수
6월 1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