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은
부모은은 ‘(일원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 중 두 번째 은혜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는 부모 은혜는 너무 자명해서 특별하게 일원의 진리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 개벽의 시대, AI, 양자시대에 맞게 깊이 생각해 보자. 지난달 주제였던 천지은에서 필자는 우주에 수많은 별들 중 오직 지구에서만이 ‘전자’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많은 독자들이 다른 별도 원자로 이루어졌으므로, 전자의 운동이 있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맞는 말이지만 생명의 근본인 메타볼리즘은 다른 별에서는 없다. 즉, 전자의 흐름으로부터 생명이 에너지를 얻는 과정은 오직 지구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지구의 자전, 태양과의 거리, 그리고 물을 붙잡는 중력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하고, 지구의 뜨거운 마그마의 전자의 지남철 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에서만 전자의 운동이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하도록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 원리에 ‘일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원불교 가르침이다.
부모의 은혜에 관련되는 일원의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이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는 과학적 본질을 안 것은 놀랍게도 8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분자 생물학이 발전하고 나서부터이다. 천지가 전자의 운동으로부터 에너지를 주셨다면, 부모는 분자의 원리로 우리에게 기능과 모양을 주셨다. DNA라는 분자 모습으로 말이다. 깜깜하던 오랜 시절, 생명이 어떻게 유전되는가 하고 물었을 때, 불교의 나가세나 존자는 양초에서 다른 양초로 불이 옮겨붙는 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이 촛불이 바로 DNA인 것이다. 새끼줄같이 길게(놀랍게도 사람키 정도)꼬여진 두 개의 분자 가닥이 DNA인데, 여기에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명의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 두 개 가닥이 서로 나선형 모양으로 꼬이는데 필요한 접착제가 바로 토끼 귀 모양을 가진 물 분자이다. 약한 접착력 덕분에 두 개 가닥을 필요할 때마다 풀어서 DNA의 정보를 쉽게 읽어낸다.
몇 년 전 돌아가신 물리학자 소광섭 정사님(과천교당)이 필자에게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DNA 정보를 읽어서, 이 정보로부터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또한 이러한 생명 활동이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데, 세포는 모든 것을 녹여서 파괴하는 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름으로 된 세포막을 보호막으로 가진 단백질 공장이라고 했다.
수십조가 넘는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DNA를 가지고 있다. 세포는 달걀과 같은 단백질 음식을 소화해서 얻는 아미노산 조각을 레고같이 조합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단백질로 재탄생시킨다. 닭을 많이 먹었다고 닭이 되지 않는 이유이다. 레고를 조립하는 순서가 모두 DNA 안에 들어 있다. 단백질이야말로 생명의 모양, 기능을 결정하는 분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도 바이러스가 가진 단백질이 사람 세포막에 붙어서 대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속여서 세포문을 열게 하는 과정이다.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는 것도 바로 이 속이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요즈음 개발하는 신약은 대부분 단백질 약이다. 바이러스용 바이오 약품은 바로 목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당연히 신약개발은 아미노산을 어떤 순서로 붙이는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생명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DNA 정보로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비해서, 약에서는 컴퓨터로 계산해서 결정한다. 이 계산과 실제 실험으로부터 성공적인 단백질 약 구조를 만드는 일은 지극히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천년의 숙제라고 하는 이 어려운 문제를 최근 AI를 이용해서 거의 다 풀어 버렸다. 마치 언어를 레고 같이 조합해 내듯이, AI는 단백질 또한 쉽게 레고같이 조합해 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선, 악을 결정하는 행동 역시 단백질이 결정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 또한 신경 전달물질이 결정하고, 이 물질 대부분 단백질이다. 이와같이 나의 성격이나 기능이 부모로부터 받은 DNA에서 결정된다면, 원불교의 마음공부 역시 자손에게 유전될까? 그리고 원불교 가르침이 인류의 DNA를 변화시키게 될까?
오래된 논쟁, 즉 DNA가 생명의 진화에 어떻게 관여하는가에 하는 질문은 과학(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는 자연이 선택한다는 주장이고 둘째는 사람 같은 유기체가 결정한다는 견해이다. 돌연변이라는 이름으로 우연히 DNA가 변화하는 경우, 자연에서 생존에 적합하면 살아남아 유전되고, 그렇지 않은 DNA는 도태된다는 것이다. 소위 자연이 선택한다는 다윈의 주장이다. 기린이 아무리 노력해서 목이 길어진다고 해도 DNA를 통해서 자식에게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다른 극단은 목이 길어지고 싶은 소망이나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생식세포 DNA를 변화시켜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주장이다. 앞 주장의 대표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 후반 주장은 시스템 유전학의 거장인 노블 교수가 대표이다. 두 학자의 논쟁은 세기의 논쟁이라고 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도킨즈와 노블의 세기적 논쟁, 유튜브 참조).
원불교는 놀랍게도 두 가지 극단을 모두 수용하는 듯이 보인다. 유전의 과학에 관여하는 모든 물질, 정신의 근본원리에 일원이 작용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생명의 진화와 유전을 분자 단위로 이해하고 조작하는 시대에 ‘부모 은혜에 감사하는 정신’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DNA를 통해서 후손에게도 유전된다는 놀라운 가능성을 암시하는 가르침이다.
또한 부모은 이후 계속되는 일원상 서원문에서는 일원이 어떻게 정신과 물질에 관여하여 인류를 진급시키는 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6월 2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