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이야기
성가 18장 불자야 듣느냐 성가 4장 둥그신 그 체성이여
성가 18장은 불자의 노래이다. 이 가사를 쓴 춘원 이광수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근대문학사 최고의 작가이다. 이 가사는 원기47년(1962) 성가 편수 이전에 교단 측에서 의뢰했고 한국전쟁 일주일 전에 이 가사를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춘원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그 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 가사는 춘원의 유작이 된다. 그의 딸 이정화도 춘원의 전기에서 이를 인정하였다. 춘원의 유작이라면 한국 문학사에서 그 가치는 매우 높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그 가치가 드러나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 교단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 성가는 원기47년의 ‘원불교성가집 제1집’에 수록되어 있고 교도의 노래(당시는 교도가)는 원기38년(1953) ‘성가집’에 수록되어 있으나, 이는 제1대 성업봉찬 행사용으로 제작한 것이라 성가 18장의 제작 연대를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 원기47년 성가 제정 당시에는 이 곡의 위치를 매우 신중하게 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생 모두를 포함하는 ‘불자의 노래’를 앞에 놓고 이어서 ‘교도의 노래’를 배치한 것은 매우 체계적인 선택이었다.
성가 4장은 법신불 찬송가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3년 후인 원기4년(1919) 11월, 김제 금산사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채 문미에 일원상을 그렸다. 이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모습을 구체화한 것으로, 대각 후의 여러 표현들을 되짚어보면 처음부터 일원으로 구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고 수행의 표본인 일원상의 내용은 곧 사은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성가 4장 ‘법신불 찬송가’에 이어 성가 5장 ‘사은 찬송가’를 연이어 배치한 것 또한 의미 있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법신불은 우주 자연의 가장 근원적인 진리이고, 이를 대종사는 ‘하나의 둥근 원’으로 표현하셨다. 그렇게 알려주신 일원의 진리를 우리는 영원한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산다.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동그라미, 상하좌우 없이 둥근 동그라미, 우주 자연의 법칙성을 보여주는 동그라미, 인간의 생노병사와 자연의 변화까지도 모두 수용하는 동그라미, 이 우주에,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명확한 진리의 상징이 또 있겠는가!
- 성가 역사 8
성가 162곡의 작사자는 모두 32인으로 전무출신 28인, 교도 2인과 비교도 2인으로 구성돼있다. 교도는 박항식(법명 성래, 전 원광대 국문과 교수, 122장)과 수천(본명 육무철, 불법연구회 당시 일본 경찰)이며, 비교도는 불경 원문(39장)과 춘원 이광수(18장)이다.
수천은 함라 출신으로 당시 이리경찰서에 근무하면서 불법연구회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소태산 대종사께 감화를 받아 입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조선사찰령으로 일본 박문사 주지 우에노가 방문했을 때 통역을 잘해 교단 수호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수천이 삼산종사를 추모하며 지은 성가 45장 만가는 교단 의식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춘원은 당시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두였고, 유년기부터 동학, 기독교, 불교를 두루 섭렵하였다. 말년에는 법화경을 번역하여 가르칠 정도였으나 그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그 위상이 절하되었다. 그래서 이 성가 가사가 춘원의 유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학적 가치를 드러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나 언젠가는 문학적 성과만으로 판단되길 기대해본다. 성가 39장의 삼귀의와 사홍서원은 불경의 원문을 그대로 가져왔고, 성가 96장과 97장에서는 이를 한글로 풀어 제작했다. 이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리라 본다.
이 글은 강산 김승원 정사님께서 열반 전 보내주신 원고입니다. 투병 중이심에도 여여하신 마음으로 올해 원고를 모두 마무리해주신 故 강산 정사님.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9월 1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