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상 성무상                            

2025-10-01     한울안신문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일원’은 무엇일까? 물리학의 정수인 소립자 박사이신 소광섭 정사님은 일원을 ‘하느님’으로 번역하셨다. 절대자라는 뜻일까? 우주에 편재하신다는 뜻일까? 이러한 질문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필자는 일원상 서원문을 읽는다. 첫 문장에서 명쾌하게 ‘일원은~’ 하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이 첫 문장을 양자 AI시대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가끔 독자께서 새로운 시각이라고 격려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첫 문장의 결론은 일원은 우리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만 하면 만날 수 있고, 또한 만물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본성을 자각하는 것이 곧 ‘일원’을 만나는 것이고, 그것이 곧 감사의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로부터 우주의 본성을 이해한 후, 밤하늘을 쳐다보며 말할 수 없는 우주심을 느낀 것이 곧 ‘감사’의 다른 표현이리라. 
금회부터, 일원의 ‘작용하시는 면’을 다루기로 한다. 먼저 첫 소절, 즉 ‘능이 성유상하고 능이 성무상하여’이다. 한자말이어서 고리타분하기도 한데, 대종사님이 사용하신 언어이므로, 아람어나 옛 빨리어로 말씀하신 예수, 석가모니의 말을 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성하고, 희귀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성유상 성무상을 해석하면 ‘변하지 않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혹은 ‘변하지 않게도 만들고, 변하게도 만든다’로 할 수도 있다. 
먼저, 성유상. 변하지 않고 항상인 것이 있을까? 어려운 주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 우주도 빅뱅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팽창 중이라 하니 이 순간도 심히 변하는 것이 틀림없다. 과학은 모든 것을 수식으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변화마저도 수식으로 표현한다. 이 수식의 시초가 ‘엔트로피’이다. 근대 과학자들은 온도 변화, 압력의 변화를 ‘엔트로피’의 증가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증기기관차 엔진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계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본질, 혹은 본성’을 알기까지는 20세기 여명에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인 볼츠만이라는 한 젊은 천재를 기다려야 했다. 즉, 분자라는 알갱이들이 공간에 존재하는 방법수를 수식으로 구하고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먼지가 한곳에 있지 않고 퍼지는 이유가 바로 먼지라는 알갱이들이 존재하는 방법 수가 퍼지는 쪽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명의 탄생과 죽음도 이 엔트로피로 설명한다. 생명의 탄생은 엔트로피가 가장 작은 상태이다. 늙고 죽음은 바로 엔트로피가 증가해서 생명을 이루는 분자가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반도체 내의 전자의 흐름이나 일기예보 또한 같은 원리로 설명하고 예측한다.  
왜 엔트로피는 증가해야 할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먼지가 한곳에 모여있는 것보다 퍼져 있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바로 일원이 성유상, 즉 변화하지 않는 면을 ‘여여자연’으로 표현한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와같이 이 세상 모든 것이 ‘여여자연’하게 변화한다는 본성이 바로 일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원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 한다는 말이 놀랍게도 현대과학까지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반면에 옛 종교에서는 ‘나의 영혼’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든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영혼이 옷을 갈아입듯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나의 영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말이다. 예루살렘 언덕에 가면 죽은 사람의 묘가 수없이 있는데, 묘 상판에 올려둔 돌멩이를 작은 돌멩이로 바꾼 것을 본 일이 있다. 하늘나라로 올라갈 때, 영혼이 쉽게 문을 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들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영혼’이 없다고 가르친 첫 스승이다. 이름표가 박힌 영혼(푸드갈라)은 없다는 선언이고, ‘무아’의 진정한 뜻이다. 변하지 않는 영혼이 없다면, 윤회란 무엇이고, 환생은 무엇인가? 궁한 답으로 나가세나 존자는 ‘마치 촛불이 다음 초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였다. 요즘 과학적으로 보면, 사람의 속성을 저장한 ‘DNA’, 그리고 관련된 단백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하는 것이리라. 

 

곰곰이 생각하면 ‘성유상’과 ‘성무상’이 우주 만물의 본성을 나타내는 두 가지 측면이라는 점도 눈치챌 수 있다. 이 변화의 원리에 단순히 엔트로피의 증가에 더해서 심신작용을 따라서 육도로 진급, 강급시키는 주체로서 일원을 상정하고 있다. 우주의 만물, 특히 생명은 마음과 신체의 작용에 따라서 발전하고 퇴보한다. 이러한 원리 자체가 바로 ‘일원’이고, 바로 인과 응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를 말한다. 아마 오래된 인도의 우주관으로 석가모니가 사용하신 언어에 가까운 빨리어로는 각각 niraya 즉 굶주린 영, 아귀 세계라는 뜻의 pettivisaya, 짐승 태생인 tiracchānayoni, 한 단계 위인 asurakāya, 인간인 manussa, 천상 세계인  devaloka이다. 천상세계의 접두어 Deva, 인간인 Manu가 영어의 devine, man과 비슷한 것을 보면, 세계 언어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도가 실제 존재한다기 보다 매일 맞닥거리는 우리의 상황으로 이해한다. 같은 일이라도 마음이 틀어지거나, 신체의 일부라도 망가지면 지옥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일원이 성유상하고 성무상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한다는 일원상 서원문이 과학까지도 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 신체 작용에 따른 인과응보를 주관하시는 주체라는 점이 새 시대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월 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