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과 이공주의 3대 4모녀 만남
소태산 대종사와 이공주의 3대 4모녀가 만난 시기에 관한 기록상 차이가 있다. 『구도역정기』와 『원불교 제1대 창립유공인 역사』에 일부 상이함이 있다.
1. 원기9년[1924년, 甲子] 10월 26일. 어머님(민자연화)과 언니(이성각)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시내 창신동 605번지를 찾아 나섰다. 이때 대종사님께서 상경하시어 이곳에 계신다고 했다. 얼마를 찾아 해매이다가 찾지 못하고 사실 우리가 찾아 헤매인 곳은 605번지가 아닌 506번지였다. 아무튼 첫 번째 날은 실패하고 다음날 출발할 때는 창신동 605번지에 제대로 당도하였다. 이로부터 이틀 후인 10월 27일 우리는 다시 대종사님을 찾아뵈었다.(『구도역정기』 구타원 이공주 법사편)
2. 그날은 1924년 음력 (시월) 스무엿새날이었는데 외할머니가 앞장을 서고 두 딸(어머니와 큰 이모)은 뒤따라서 창신동엘 갔다. 나는 그 이틀 뒤에 어머니가 같이 가자고 해서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따라 나섰다. 11월 24일 음력으로 시월 (스물)여드렛날 내가 전라도에서 오신 생불님을 처음 뵌 인상은 이러했다.(『구도역정기』 융타원 김영신 법사편)
3. 그 전부터 박사시화씨와 동생 박공명선씨 등은 이공주 선생에게 대종사님께서 상경하시면 뵈오러 가자고 수차 권하여 오던 터 이라 서로 약조가 되어 10월 26일 동대문 밖 창신동 605번지에서 숙겁의 스승 대종사님과 해후(邂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돌아온 세 사람은 그 이튿날 다시 대종사님을 찾아뵈었고 대종사님께서는 이날 정식으로 법명증을 내려 주시었다. (『원불교 제1대 창립유공인 역사』 제1권. 제1호 이공주)
4. 1924년 10월 26일은 외조모 민자연화씨, 모친 이성각씨, 이모 이공주씨 등 전 가족이 서울 창신동에서 대종사님을 알현하고. 선생은 이틀 후인 10월 28일 3대 4모녀가 대종사님을 다시 배견하게 되었을 때 따라가 그 자리에서 입교하고 영신(永信)이란 법명을 봉수하였다.(앞의 책. 제12호 김영신)
5. 원기9년 10월 26일 박사시화 선생의 인도로 대종사님을 친견한바 다년간 쌓인 소원을 일시에 성취한 듯 환희용약하였으며. (앞의 책. 제48호 이성각)
초회(初會)는 김영신과 이성각 뿐만 아니라 이공주의 기록 중에도 10월 26일로 규정하고 있다.
『구도역정기』이공주 편에 따르면 이공주 일행은 10월 26일에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고 있는 창신동 605번지를 506번지로 잘못 알아 찾지 못하고 그 다음날에야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월 26일을 만나기 위해 나선 날로 볼 것인지 실지로 만난 날로 볼 것인지의 판단이 요구된다. 『원불교 제1대 창립유공인 역사』 이공주 편에서 소태산과 처음 만난 날을 10월 26일로 규정한다. 이로보아 『구도역정기』 이공주 편의 10월 26일은 소태산과 해후한 날을 규정한 것이며, 이후 설명은 그 과정을 기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재회(再會)의 경우, 김영신은 10월 28일이라면 이공주는 27일로 회고한다. 이공주 일행은 첫날 방문을 시도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 다음날 다시 찾아나서 배알했으며, ‘이틀 후’인 27일 재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찾아 나선 날은 25일이요 초회는 26일이 된다. 『원불교 제1대 창립유공인 역사』 이공주 편의 ‘이튿날’은 초회를 26일로 보면 그 다음날인 27일이 된다. 26일 27일 연이어서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공주의 ‘이틀 후’는 소태산과 처음 만난 26일로부터 이틀 뒤로 여겨지기에 28일이 타당하며, ‘이튿’은 ‘이틀’의 오기(誤記)가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통상 초회는 음력 10월 26일이요 재회는 28일로 본다.
소태산 대종사가 이공주에게 보낸 ‘갑자 11월 6일’자 편지 한 대목이다.
“처사가 (창신동에서) 나오던 날이 설중(雪中)이었는데 네 분이 수고를 생각지 않으시고 이 사람을 신(信) 하시어 또 가보셨다 하오니 더욱 감사한 생각 날로 깊어가나이다. 공주의 3대4모녀를 만난 후로는 경사로 지내나니”(『세계가 함께 보는 구슬』)
이공주의 3대 4모녀는 10월 28일 소태산을 재회한 후 재차 창신동을 방문했던 것이다. 처사는 소태산 대종사로 3대 4모녀라 지칭한다.
김영신은 이모인 이공주가 계동에 거주할 때 소태산을 배알했다고 하나(『구도역정기』 융타원 김영신 법사편), 이때는 남편 삼년상을 마친(1924. 음력 10.18.) 7~8일 후로 견지동 14번지에 살고 있었다. 이공주는 다음해인 1925년 9월 12일 계동15-3번지로 이사한다. (「토지대장」)
견지동 이공주家(현 조계종가사원 부근)에서 창신동 605번지까지는 대략 3.8㎞로, 집 앞 안국역(1923년 8월 개통)에서 전차에 탑승하여 종각역을 거쳐 종로의 역을 지나 동대문역에서 하차 후 창신길 따라 도보로 갔을 것이다.
공동연구자 방길튼·박혜현·윤지승
11월 21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