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시간
지금 우리는 어떤 인연과 시간, 공간에서 서로의 ‘간(間)’을 맞추며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인연 따라 오고 가며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시간과 공간의 고리를 벗어나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도 때로는 참으로 소중하다.
요즘은 교단의 정기 인사철이다. 인사의 원칙이 있고, 전무출신의 정신과 자세를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인연이 다하면 움직이는 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어떤 이는 상하좌우의 ‘간(間)’이 맞지 않아 이동을 택하고, 어떤 이는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리를 옮긴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시간(時間)·공간(空間)·인간(人間)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간(間)’이 잘 맞는다.
아무리 숭고한 진리라 해도, 그 시간(時間)과 그 공간(空間)에서 사람들(人間)의 생활 패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변화는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서로 양보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비움’이라는 단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관계의 결을 더 깊고 부드럽게 만드는 힘을 지닌 듯하다. 텅 비움이라는 말속에는 내공과 인내, 정성이 함께 깃들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지난 서원과 목적을 조용히 반조해보게 된다. 들판을 바라보면, 때가 되면 아무 이유 없이 빈 공간을 내어주는 대지처럼 우리 마음 또한 다시금 진공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인연과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 서로의 ‘간(間)’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비움은 내 안의 습관과 욕망, 번뇌망상까지도 조용히 내려놓게 한다. 올 한 해, 나는 과연 상하좌우의 시간·공간·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불공드리고 보은하며 살아왔는지,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이런 반조 속에서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기운과 기운이 응하여 서로 윤기가 도는 삶을 위해 오늘도 ‘간(間)’을 잘 맞추어가고자 한다.
12월 1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