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적지…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교화의 현장”

서울원문화해설단(이하 원문화해설단)의 해설은 단순히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성적지를 안내하는 말 한마디, 기도식에서 올린 묵언의 심고, 순례객과 눈을 맞추는 태도까지. 그 모든 과정이 곧 속 깊은 자기 수행이자 공부이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닫혀 있던 계동 이공주 선진가(家)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그 의미를 가장 깊이 체감한 이들 또한 원문화해설단원들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으로만 그려왔던 성적지가 교화의 장으로 되살아나는 순간, 이들은 단순한 해설자가 아닌 증인으로 그 자리에 섰다. 감사 기도문을 올린 간절한 합장에는, 공간을 지켜온 시간과 이제부터 감당해야 할 책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번 대담은 원문화해설단원들이 직접 말하는 ‘서울 성적지의 의미’에 귀 기울인다. 무엇이 이들을 성적지로 이끌었는지, 해설을 하며 어떤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서울 성적지가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하는지를 듣는다.

2025-12-24     한울안신문

 

원문화해설단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 동기와 소감을 먼저 전하신다면.
박혜현 단장(이하 박혜현) “소태산대종사님의 경성교화 역사를 알고 싶어서 참여했다. 한 교당 교도로만 있을 때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교구 활동을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분들 보며 교당을 향한 마음도, 신심도 깊어진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윤지승 단원(이하 윤지승) “원기100년에 원불교의 활동을 보니 문화적 코드가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도보답사 등 서울시 운영 프로그램 등이 많았던 반면 원불교는 서울 성적지 조차 어딘지 알려진 게 없어 아쉬움이 큰 상태였는데, 교구에서 원백행사(원불교백주년행사) 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됐다.”
이태언 부단장(이하 이태언) “법동지의 권유로 참여해 처음에는 낙오되지 않기 위해 5개월간 무결석으로 참여했다. 서문성 교무님이 광주에서 오셔서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현재 해설단원 37명 중 1기 단원들이 20여 명 정도다. 초창기에는 해설단원으로서 해설에 직접 참여하지 못해 조금은 위축됐다. 그러나 모든 단체에 1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일이 있음(지금은 수업 때 사회를 봄)을 깨닫고 열심히 하고 있다.”
김시명 총무(이하 김시명) “그동안 많은 활동(교당 봉공회, 원음합창단, 교정교화 등)을 하면서 문득 노년을 어떻게 더 충실하게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해설단에 참여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서울성적지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고, 김관진 교무님을 만나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소중하다. 원문화해설단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탕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정인창 초대 단장님의 노고가 컸다. 체계를 세워주셨던 원문화해설단의 공덕주이다. 그 바탕 위에 박혜현 단장님과 임원들의 사심없는 신심, 우렁각시 같은 단원들의 노력과 결과로 꽃을 피워가고 있다.” 

‘해설의 태도’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해설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유념하고 있는 기준이 있는지. 
박혜현 “역사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행적을 제대로 알아야 일원상 진리와 소태산 대종사님의 포부를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소태산께서 경성(서울)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으셨는지, 순례객들께 100여 년 전 소태산의 발자취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교감하려고 노력한다.”
윤지승 “제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실과 교사가 달라 당혹스러웠다. 역사적 근거와 교사를 바탕으로, 정확한 해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교도님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하고, 순례객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이태언 “저는 해설은 하지 않지만, 해설단의 보조자로서 순례객들의 안전을 늘 지키는 ‘안전지킴이’의 마음이다(웃음).”
김시명 “저 또한 처음부터 해설단의 살림을 맡지않고 현장에서 해설을 했으면 잘했을텐데 하는 말을 노래하듯 말했다(웃음). 하지만 (해설단의)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 태도가 원문화해설단을 오늘까지 있게 한 것 같다.”

10년 넘게 바라만 보던 이공주 선진가(家)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감회를 느끼셨는지.
박혜현 “원문화해설단 창립 때부터 해설단원들의 염원은 이공주 선진가의 매입이었다.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금모으기도 했고, 순례 때 수고비로 주신 돈도 모두 모아서 약 1억 3천만 원 정도를 모았다. 이렇게 순례 때마다 원문화해설단원들과 순례객들이 염원해주시니,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고 있었다. 신산 박오진 교도님께서 구입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그저 감사해 두 손이 저절로 모아졌다.”
윤지승 “이젠 문화 불사의 시대다. 원불교 최고이며 첫 문화 지성인이셨던 이공주 선진가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리에게도 문화의 문이 열리는구나 싶어 가슴이 벅찼다. 우리 교단에도 문화적 안목을 갖춘 분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이태언 “처음 현장 실습 중 서문성 교무님과 골목에 들어서면서 말소리 발소리조차도 크게 내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마음에 담았던 성적지를 매입하게 돼 너무 너무 감사했다.”
김시명 “매입 소식을 접하고 임원들과 첫 방문을 했을 때 그 감동과 감격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멀리서 바라보며 ‘저기가 구타원 선진님 댁이다’고 했던 일이 이젠 추억이 됐다. 소태산 대종사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공주 선진가에서 진행된 감사 기도식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이나 순간이 있다면.
박혜현 “10년 동안 염원하며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기도문 준비 때부터 눈물이 났다. 이태언 부단장님이 기도식 시작 멘트 때부터 울먹거렸고, 저 또한 눈물 때문에 기도문을 읽을 수가 없었다. 참석한 전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감격스러워했다. 구타원 선진님께서 작사하셨지만 정작 이 현장에서는 부른 적이 없는 성가를 큰 소리로 부를 때는 전율도 일었다. 그날 기도식 후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도 성금(2백만원)을 냈다. 마치 소태산 대종사님과 구타원 선진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
윤지승 “기도식에서 구타원 선진님이 받든 법문을 낭독하고 성가를 부를 때 너무 울컥했다. ‘어서 성불하라, 도덕박사가 돼라’ 하신 소태산 대종사님 말씀 그대로 받드신 구타원님의 신성을 떠올렸다.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교법으로 승화시킨 결단력과 신성을 떠올리며 나는 그만큼의 신성과 불퇴전이 있는가를 반조해봤다. 교단에서 구타원 선진님이 하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가슴이 찡했다.”
이태언 “그동안 순례할 때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곳이다. 높았던 담장 안 마당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뭉클하게 뛰었다. 평소 수업때 보다 더 많은 단원님들이 모였고, 10년을 기다린 감동이 뭉쳐진 기도식이었다.”
김시명 “당시 저는 해외에 있어서 (기도식) 참석을 못 했지만, 그 감동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느껴진다.”

이공주 선진가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길 기대하는지. 교화적인 가치 등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면.
박혜현 “이공주 선진가는 소태산 당대에 계동연구회로 교당 역할을 한 곳이며, 이공주 선진은 일기법의 첫 시행자이다. 100여 년 전 소태산 대종사님과 이공주 선진께서 꿈꿨던 마음공부의 도량으로, 그리고 각 교당 정례법회를 놓친 분들을 위해 야회 장소나 선방으로 이용되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윤지승 “원불교 문화를 시민들에게 전하고 체험하게 하는 문화 전달의 구심터가 되길 바란다. 바람이 있다면 이공주 선진가 옆집도 매입해 부지를 좀 더 넓혔으면 좋겠다(웃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방향성과 정책을 기대한다.”
이태언 “순례객들이 창신동 임시출장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을 새기듯, 이공주 선진가에서도 소태산 대종사님의 성혼을 체받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구타원 선진님께서 대종사님의 법문을 전하는 법낭의 역할을 해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후진들이 이곳에서 대종사님의 법문을 전하며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시명 “누구나 오가며 기도할 수 있고, 단별로 단회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소규모 강연과 작은 음악회, 전시회 등이 열리며 세상을 향해 항상 문이 열려 있는 따듯하고 단아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 성적지 해설을 진행할 때 강하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박혜현 “교통편도 열악한데 소태산 대종사님이 19년 동안 100여 차례 서울을 내왕하신 이유를 같이 고민해보자고 한다. 서울 곳곳에 대종사님의 법설 현장이 많다. 대종사님의 포부와 경륜을 느끼려면 순례를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찾고 또 찾아주길 당부한다. 일타원 박사시화 선진, 육타원 이동진화 선진, 팔타원 황정신행 선진, 구타원 이공주 선진님을 뵌 분들은 순례할 때 태도부터 다르다. 서울 성적지가 오픈되었을 때 중앙총부 수도원 원로 교무님들이 북촌길코스를 순례하셨는데, 순례 후 금붙이와 성금 600여만 원을 보내주셨다. 그 원로교무님들을 잊을 수가 없다. 작년에 서울 성적지 세 코스를 순례하신 후 긴 감상과 당부를 한울안신문에 남겨주신 김정안 교무님도 잊을 수가 없다. 또 창신낙산길 순례 후, 단원들을 위해 일원상을 손수 제작해 보내주신 황호남 교도님(북일교당)도 잊을 수가 없다.”
윤지승 “해설단 초창기 배운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웃음) 제 해설이 재미없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다. 그 후 도보답사 등을 신청해 다른 곳의 해설사는 어떻게 하나 유심히 본 적이 있다. 잘 배우고 많이 안다고 유창한 해설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경험과 벤치마킹의 중요함을 배웠다. 지금은 소태산 대종사님의 경성 행가(견문지, 관찰지, 교화지)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자 한다. 사례비를 내 손에 쥐어주며 꼭 밥한끼 사먹으라고 당부하신 교도님을 잊을 수 없다.”
이태언 “원문화해설단이 창단되기 전 서울 순례객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 원로 교무님들께서 먼저 오셨던 때가 생각난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오셨던 왕타원 고원선 교무님이 특히 생각이 난다. 몸이 아픈 동생 교도에게 꼭 성지는 가봐야 한다며 서울에 머물면서 순례를 하셨다. 서울성적지를 순례할 때마다 소태산 대종사님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이곳이 어떤 곳인지, 당시 선진님들의 구도 열정을 잘 헤아릴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한다.”
김시명 “소태산 대종사께서 100여 차례 상경 시 말씀하신 법문이(90여 개) 있다. 성적지 마다 남기셨던 대종사님을 법문을 전하며 순례 오신 교도님들과 같이 공부하는 도반의 길을 걷고 자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불교 서울 역사를 돌아보고 신앙수행의 지침으로 삼는 노력이 단원들과 순례객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원문화해설단이 ‘검증과 대조’를 연구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는 중요성을 전한다면. 아울러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제가 있다면.
박혜현 “소태산 대종사님의 경성교화를 공부하다 보니, 선진들께서 기록으로 남겨놓으신 자료들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소태산의 서울교화 역사만은, 교단 자료·고지도·고신문·논문과 책 등을 크로스 체크해 잘못 알려진 것은 고치고, 새로 알아낸 사실은 널리 알리고자 한다. 단어 하나, 년도 하나도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다행히 방길튼 교무님(안산국제교당)의 길잡이로 서울성적지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어서 감사드리고 있다. 훗날 교단에 반듯한 소태산의 경성교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소태산의 경성교화 책을 각 교당 뿐 만 아니라 일반 도서관에도 비치하고 싶다.”
윤지승 “적어도 소태산 대종사님의 (서울)행가 만큼은 정확히 기록되고 그 행가의 의미는 무엇인지 잘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신동출장소(온전했던 터)와 이공주 선진가, 돈암리회관은 수많은 스토리텔링이 있는 곳이다. 이 3곳을 구심점으로 서울 행가의 이야기가 흐르고, 재탄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성적지는 견문과 실행(실천)의 결과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파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태언 “예전에는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만큼 교사에 대한 기록들에 오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방길튼 교무님, 박혜현 단장, 윤지승 단원이 지극한 정성을 들여 고증해내고 있다. 원문화해설단의 10년의 노력을 조금씩 인정해주고 격려해주신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찾아낸 고증들이 교단 역사 속에서 꼭 바르게 수정되기를 바란다.”
김시명 “박혜현 단장과 윤지승 단원의 사심 없는 노고와 원불교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는 하늘에 닿아있는 듯하다. 원문화해설단에 신심 있는 신입단원들이 들어와 오래 오래 서울성적지가 수호되고 알려지길 간절히 바란다.”

에필로그
서울원문화해설단은 지금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무엇을 더 연구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와 만날 것인지, 서울 성적지를 어떻게 살아 있는 공부의 장으로 가꿀 것인지. 이 질문은 서울 성적지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교화의 현장이며, 해설은 지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일이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성지를 해설한다는 것은 결국, 교단사를 오늘의 삶으로 체험하는 일임을, 원문화해설단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대담 이여원 편집장

 

12월 26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