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가 밝힌 인과, 어떻게 믿고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인과’라는 포장 안에  이루어지는 침묵이나 방치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작금의 법과 제도를 통해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순리에 맞게 해결되도록 지켜보는 것.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치신 진정한 인과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2026-02-11     한울안신문

나는 자주 유튜브에서 ‘원불교’를 검색하곤 한다. 교단에서 올리는 정성 어린 설교 영상이나 교도님들이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올리는 숏츠, 교무님들의 정보 영상을 보며 마음을 채우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다. 때로는 타 종교의 화려한 영상 퀄리티나 홍보력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만의 소박한 진심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원불교’를 검색했다가 당혹스러운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원불교는 위험합니다.’라는 제목의 숏츠였다. 지방의 한 종교시설에서 업로드한 그 영상은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확인해 보니 ‘원불교는 기만합니다’, ‘원불교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등 자극적인 제목의 숏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숏츠의 골자는 ‘원불교에 있는 것’이 진리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주장이었다.
내가 혹시 오해한 것일까 싶어 숏츠의 출처가 되는 설교 영상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곳의 성직자는 원불교가 ‘원한, 불신, 교언’의 줄임말이라며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이웃 종교 원불교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그의 주장은, 궤변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백번 양보하여 그들끼리 내부적으로 줄임말을 만들어 쓴다 한들, 전 세계인이 함께 이용하는 플랫폼에 특정 종교를 연상케 하는 명칭을 그대로 적시해 비판적인 내용을 게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가뜩이나 타 종교에 비해 콘텐츠 양이 적은 상황에서, ‘원불교’라는 키워드로 이런 부정적인 영상이 검색된다는 사실에 속상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의성 있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마치 경찰에 신고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도 교무님께 연락을 드렸다. 특히 ‘청년마음훈련’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걱정이 더 컸다. 훈련에 참여했던 비교도들이 원불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다 이런 왜곡된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면, 그들이 느낄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물론, 그 성직자나 종교시설이 스스로 죄짓고 인과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럴 때 우리 원불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흔히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인과에 맡기자’는 태도를 취하며, 상대의 언행을 인과의 흐름이라는 거시적 관점에 두고 크게 대응하지 않기도 한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분별을 접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려는 공부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과연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힌 인과의 도가 정녕 그 흐름에만 맡겨두라는 것일까?
『대종경』인도품 55장을 보면, 포수의 그릇된 탄환으로 자식을 잃을 뻔한 상황을 두고 제자들이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은 각각 ‘인과보응으로 생각하여 아무 일 없게 하겠다.’, ‘법에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겠다.’, ‘공부인이니 천명으로 여기고 넘기겠다.’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를 들으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셋 모두 중도를 잡지 못했다 하시며, 지금의 법령 제도에 맞게 관청에 신고하고 그 이후의 일은 법을 가진 관청의 처리에 맡기라고 가르쳤다. 여기서 우리는 대종사께서 인과를 부정하지 않으시면서도, 동시에 시대의 법과 제도를 활용해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양한 정보가 넘실거리는 세상이다. 잘못된 정보나 근거 없는 비방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인과’라는 포장 안에 이루어지는 침묵이나 방치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작금의 법과 제도를 통해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순리에 맞게 해결되도록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치신 진정한 인과의 도리이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  

2월 1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