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연구회 양로당 건설 제안자 박사시화와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
원기14년(1929) 음력 9월 26일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 예회에서 일타원 박사시화(1867~1946)는 양로당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이날은 불법연구회 사기념일 중 제사기념일이었다.
〈경성지회 삼예회약록三例會略錄〉
시창14년(1929) 음력 9월 26일
본일은 예회요, 겸(兼)하여 본회의 4기념 중 하나인 제사기념일이었다. 오전 11시부터 이공주씨의 사회로 개회하여 오후 1시까지 자유여감(自由餘憾)으로 유쾌히 지내고 이어서 박사시화 가로대 “저도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전무출신은 하였으나 무산(無産)하고 노쇠하여 모든 일이 마음대로 아니 되며 민활한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 본 결과 이제부터 3년을 기한하고 노신(老身)이 만행(漫行)하여 목적한 금액(2~3천원)이 되면 본관에 양로당을 건설하고 이 육신으로는 몇 해 남지 못한 우리 늙은이들이 모여 첫째 우리 종사주의 식사와 의복 등절(等節)을 받들며 여가로 우리의 힘 미치는 대로 노동도 하며 공부도 하다가 열반에 들기가 소원입니다. 여러분 의향은 어떠하십니까?” 한대, 회중은 모두 찬성하고 권홍제화씨는 답왈(答曰) “나도 평생에 만행수자(漫行修者)되기가 소원이더니 이제 동지를 만났사오니 저도 함께 실행하겠습니다.”하고 두 분이 악수하여 분업적(分業的) 행동을 작정하시니 사시화씨는 각 지방으로, 홍제화씨는 경성에서 만행하시기로 하다. 이어서 당석(當席)에서 몇 사람이 자연 출연하니 도합 452원야(圓也)러라.(〈월말통신〉제19호, 시창14년 기사己巳 9월분)
당시 63세인 박사시화는 자유감상담으로 “이제부터 3년을 기한하고 만행하여 목적한 2~3천원을 모으면 익산 본관에 양로당을 건설하여 우리 늙은이들이 모여 종사주의 식사와 의복 등절(等節)을 받들며 여가로 힘 미치는 대로 노동도 하며 공부도 하다가 열반에 들기가 소원입니다.”라는 의견을 제안한다.
이에 경성출장소 회원들은 이 뜻에 찬동한다. 특히 박사시화는 각 지방으로, 권홍제화는 경성에서 분업하여 활동하기로 하며, 예회 당일 몇몇 사람이 출연(出捐)하여 452원을 모은다. 그렇다면 박사시화는 불법연구회 양로당 창설 제안자이며,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은 발의처요 자금을 모은 곳이다.
이후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에서 발의하여 출연한 양로당 건축기금은 익산총부 (新)양잠실 건축에 전용된다. 그 이유는 원기14년(1929) 건축한 양잠실 겸 공회당을 1년간 사용해 본 결과 양잠기 말과 선기 초, 선기 말과 양잠기 초가 서로 맞물려 목적 사용에 곤란하므로 별도의 양잠실 신축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비가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무렵 경성출장소 이공주 외 수 삼인이 불법연구회 양로당 건축 기금으로 500여 원을 의연한다. 이 자금은 박사시화가 원기14년(1929) 음력 9월 26일 경성출장소 예회에서 양로당 건설 제안에 경성출장소 회원들이 출연한 금액이다.
원기15년(1930) 음 2월에 익산본관은 임시임원회를 개최하여 우선 경성출장소에서 출연한 양로당 건축비로 신양잠실 1동을 건축키로 하며, 양로당은 본관 제2호실(꼭두마리집)를 제공키로 하고 희사자의 양해를 구해 2월 15일부터 신양잠실 건축을 공회당 맞은편(현 정화정사 터)에 착수한다. 그리하여 목조 초즙을 완성하고 4월 24일에 농업부원 일동이 신양잠실로 이사한다.
익산총부의 건축 순서에 따라 1호실은 도치원(본원실), 2호실은 꼭두마리집(세탁부), 3호실은 영춘원(구조실), 4호실은 금강원, 5호실은 공회당이다.
〈시창14년도 사업보고서. 서무부 처무 요건〉
‘잠실건축’ - 거년 춘(春)에 건축한 현 본관 제5호실로 겸용하라는 것이던 바 거년 1년간 실지적으로 사용해 본 결과에 양잠기(養蠶期) 말과 선기(禪期) 초 쌍립되기도 하며 선기 말과 양잠기 초가 쌍립되기도 하여 곤란이 막심함으로 일반은 양잠실 신축의 필요를 절감하였으나 비용문제에 관련하여 유의미수(有意未遂)하더니 차제 경성 이공주씨 외 수삼(數三)씨로부터 본회 양로당 건축의 목적으로 금(金) 오백여원을 자원 의연하거늘 소화5년(1930) 2월 8일에 임시임원회를 개최하고 난만토의하여 차(此)로써 우선 양잠실 일동을 건축키로 하고 양로당으로는 현 본관 제2호실을 제공키로 의견이 일치되어 즉시 의연 제씨의 양해를 구득하고 동 15일부터 그 사(事)에 착수하여 금(今) 미료(未了) 중이다.(『교고총간』제5권)
이처럼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 회원들이 출연한 불법연구회 양로당 건축 기금은 신양잠실 건축비로 전용된다. 이후 이 신양잠실은 원광대학교 전신인 유일학림(1946.05.01 개설) 교사(校舍)로 사용된다. 그리고 1952년 도치원에 신룡양로원을 발족하며 익산양로원으로 명칭 변경하였다가 중앙수양원으로 발전한다. 원불교의 양로사업은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에서 처음 발의되어 발전한 것이다.
원불교서울성적지연구회 방길튼·박혜현·윤지승
4월 24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