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42호)
제11장 방언역사(防堰役事)와 회실건축(會室建築)
그때 대종사께서는 조합원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생긴 것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려 하심인 듯하니 그대들은 조금도 거기에 끌리지 말고, 또는 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지도 말라. 일은 반드시 바른 대로 돌아오는 것이 이치의 당연함이거니와, 설령 우리의 노력한 바가 헛되이 저 사람의 소유로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 있어서는 양심에 부끄러울 바가 없으며, 또는 우리의 본의가 항상 공중을 위하여 활동하기로 하였으니, 비록 처음 계획과 같이 대중을 위하여 사용하지는 못하나, 그 사람도 또한 대중 중 한 사람은 되는 것인즉, 다만 한 사람에게라도 그만한 이익을 주지 않는가? 이때에 있어서 그대들은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오직 공중을 위하는 생각만으로 근실히 노력할지어다.” 하시니 조합원 등은 이 넓은 법설을 듣고 더욱 감탄심을 내어 공사를 계속하여 진행하였더니, 그 후에 대부허가서(貸付許可書)가 다행히 본 조합으로 나오게 된바, 분쟁은 드디어 바르게 해결되고, 일반 관중의 조합에 대한 신뢰도 또한 일층 깊어졌다. 10월에 옥녀봉 밑에 본 조합실 건축을 착수하여 12월에 이를 준공하였다. 병진(丙辰, 1916년)이후로 조합원의 집회 장소가 일정치 못하여 처음은 범현동에 있는 이씨 제각 일우(一隅, 한켠)를 빌려 썼고, 다음은 강변 주점을 임시 방언 관리소로 정하였으나, 모두 매우 비좁고(협착, 狹窄) 또는 여러 가지 행사에 자유롭지 못하여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던 중 이에 비로소 건축을 기공한 것인바, 조합원 등이 일변(一邊, 한편으로)은 방언에 종사하고 일변은 집짓는 일(가역, 家役)에 종사하며, 산에 올라 나무를 베고 땅을 녹여 흙을 이겨서 풍설(風雪, 눈바람 또는 눈 위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무릅쓰고 근근히 건축을 마치니(성조, 成造) 이것이 곧 본회의 가장 처음 건설된 회실이었다.
<시창 4년 (기미 29)>
3월에 방언 공사가 준공되니 공사 기간은 만 1개년이요, 개간 면적은 약 십수 정보이라, 이것이 비록 광범한 면적은 아닐지나 본 회에 있어서 가장 처음 기초되는 귀중한 토지이며, 대종사 이하 일반 단원의 혈심 노력한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방언에 대하여 정신과 육체와 재력을 합하여 전문적 노력한 자는 물론 8인 조합원이어니와, 그 외에도 육신과 재력으로써 직접 혹 간접으로 후원한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씨명 氏名]은 아래와 같다. 유정천, 신정랑, 이원화, 양하운, 김순천, 김화옥, 서기채, 박영환, 김명랑, 유기만, 김영철, 신연숙, 송벽조, 김동순, 신정권, 이공주, 이동안, 이운외.
일화(逸話)
사심을 경계하는 자연의 위력
방언을 마치고 처음 개간을 시작할 즈음에 대종사께서 모든 조합원에게 각각 농지 조성할(작답 作畓) 구역을 지정해 주시고, 그 만든 논은(작답된 토지) 개간 당인(當人)의 사가(私家) 소작지로 사용하라 하시고, 이에 말씀하시되 “논을 만들 때(작답 作畓)에 공력이 많이 들고(역처 役處) 토질(토품 土品)이 좋지 못한 곳을 서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참 나의 동지라.” 하시었는데, 한 조합원이 생각하기를 개간 중 힘이 적게 들고 토질이 제일 양호한 곳을 선택하여 먼저 자기의 소작지를 정하리라 결심하고, 장차 대종사와 몇 동지에게 말씀하려 하였으나 양심에 미안을 느낀 바 있어서 겉으로 발표는 아니하고 있던 중, 마침 큰 비가 와서 방언이 무너지고 터져(궤결 潰缺) 언답에 수재(水災 물난리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라. 그 조합원이 먼저 나와 수해처를 조사하다가 문득 딴 느낌을 얻게 되었으니, 곧 다름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 소작지로서 독점하려던 그 한계가 마치 계획선(計劃線)과 같이 전부 피해를 당하였고, 그 외에 다른 피해처는 없게 된 것이다.이것을 본 그 조합원은 크게 경황(驚惶 놀래고 두려워 허둥지둥)하여 다시 생각하되 ‘소작지의 좋은 곳을 점령하려 함이 비록 적은 이욕에 불과한 것이나 이와 같은 경계에 공정한 정신을 가지지 못하고 암연(暗然 흐리고 어두움, 의뭉하게 속으로)히 사사(私私)한 욕심에 끌리게 된다면 장차 큰 이해가 있을 경우에는 어찌 그 공심을 조금이나 보존하게 되리오. 이것은 대종사의 교훈하신 성의에 위반이 되고 일반 동지와 더불어 서로 지켜오던 약조를 망각함이 아닌가? 이제 천지 허공에서 나의 마음속에 싹트게 된 사심을 알으시고, 이와같이 유표(有標)한 징벌을 보이시니, 내 기왕 양심이 있는 이상에는 어찌 즉각 그 마음을 참회하여 일반 동지에 자백하지 않으리오.’ 하고 곧 대종사와 조합원의 회집 장소에 달려와서 그 경과 사유를 일일히 고백하니, 조합원 등은 천의(天意)가 이처럼 명명(明明)하심을 경탄하는 동시에, 그 신성과 공심이 더욱 결속된 바가 있었다 한다.
(6월호에 계속).
5월 1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