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 이공주家와 북촌 인연들의 거주지’ 서울원문화해설단, 제4회 원불교 서울성적지 연구보고회
서울 성적지 요지가 될 계동 이공주家 원형에 대한 총체적 탐구 소태산 대종사와 이공주 선진·초창기 서울 인연들 활동 사실적으로 체현 계동 일대 북촌의 제자들이 살았던 집과 이사했던 과정까지 파악
서울 성적지의 요지가 될 계동 이공주家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결집됐다. 계동 이공주家 원형을 찾기 위해 연구 노력하고 있는 서울원문화해설단이 제4회 원불교 서울성적지 연구보고회를 5월 18일 한강교당 멀티룸에서 진행했다.
‘계동 이공주家와 북촌 인연들의 거주지’를 주제로 한 이번 연구보고회는 지난해 계동 집터 매입(박오진 대호법 전액 희사)에 따라, 계동 이공주家에 대한 고증이 일차적 과제로 요청된 데 따른 것이다.
원불교 서울성적지 연구보고회는 방길튼 교무(안산국제교당), 박혜현 서울원문화해설단장(정릉교당), 윤지승 교도(가락교당) 등이 중심이 돼 원기108년(2023) ‘서울성적지연구회’를 결성하며 시작됐다. 원기109년(2024) 제1회 연구보고회를 시작으로, 원기110년(2025) 제2·3회를 거쳐 제4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제4회 연구보고회는 계동 이공주家 원형에 대한 탐구로, ‘소태산과 이공주의 3대 4모녀 만남’, ‘서울교화의 기둥, 이공주의 계동집’, ‘계동 이공주 가옥의 형태 및 구조’, ‘계동연구회 이공주家와 계동 야회’, ‘계동연구회, 이공주家가 지닌 교단사적 의의’, ‘소태산과 계산의 계동 별장’ 등이 발표됐다. 교단 내 작은 단서에서도 전체를 파악하는 안목과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총망라해 그 전모를 파악하는 지난한 과정인 것이다.
또한 북촌 인연들의 거주지로 ‘경성지부 재가교무, 성성원의 집’, ‘서울교화의 토대, 이동진화의 집’, ‘서울교화의 출발, 박사시화의 혈연 박해산·박영주의 집’, ‘불법연구회 경성출장소 창립발기인 이정원·김낙원·심오운과 경운동 민영휘家’ 등 계동 일대인 북촌의 제자들이 살았던 집과 이사했던 과정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해 주목됐다. 이번 발표 내용 중 ‘계동연구회 이공주家와 계동 야회’, ‘계동연구회, 이공주家가 지닌 교단사적 의의’를 발췌해 요약한다.
계동연구회 이공주家와 계동 야회
이공주家는 예회를 보았던 계동연구회이면서 야회를 열었던 곳이다. 원기14년(1929) 음력 1월 7일에 개최한 계동(桂洞) 야회(夜會)는 불법연구회 시대 저녁에 별도로 진행된 법회의 첫 시도라 할 것이다. 이공주가 주재하는 계동 야회는 예회의 연장이었다.
이공주家는 사가(私家)이면서도 예회와 야회를 진행하는 공가(公家)로 사용되었다. 이공주는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의 사무를 전담했고, 원기15년(1930) 4월부터 재가교무에 임명된다. 이공주는 한 명이라도 참석자가 있으면 야회를 진행했다. 계동 야회는 이공주의 주재하에 원기14년(1929) 1월 7일부터 원기17년(1932) 7월 16일까지 진행된다. 이공주가 전무출신으로 출가하여 익산총부로 거처를 옮김에 따라 계동 야회는 중단된다.
이를 총괄해 볼 때 낮에 여는 예회에 참석치 못한 회원들을 위해 밤에 여는 야회는 경성의 계동 이공주家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공주家는 예회 및 야회를 보았던 곳으로, 일명 계동연구회로 불리었다. 이정원, 김낙원, 심오운은 경운동에서, 계동에 살았던 박공명선과 성성원 부녀 및 이성각도 예회에 참석 못했을 경우 계동 야회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계동연구회, 이공주家가 지닌 교단사적 의의
‘도덕박사’의 서원을 키운 곳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경길에게 공주(共珠)라는 법명을 주어 ‘세계가 함께 보는 구슬’이 되는 서원을 심어 준 후, 이공주家(계동 15-3)에서 이공주의 30회 생일날 ‘문학박사’가 되려는 꿈을 세상을 구하는 ‘도덕박사’가 되도록 확장시킨다(『구도역정기』구타원 이공주 법사편).
성불을 촉구하여 여성 지도자로 세운 곳이다.
소태산은 이공주에게 ‘어서 성불하여 불우한 여성을 맡아 달라’는 당부의 편지에 이어, 성불을 목적하는 기관을 이끄는 거진출진이 되도록 촉구한다.(청하문총 2, 『세계가 함께 보는 구슬』) 이에 이공주는 계동 집에 거주하며 경성출장소 사무 전담 및 재가교무 역할을 수행한다.
미생전(未生前)의 일원상 자리에 발심을 일으킨 곳이다.
소태산은 계동 15-3 소재의 이공주에게 “일구(一口)로 세계를 다 마셔버리고 항상 홀로 드러나 있는 물건이 존비귀천(尊卑貴賤)도 바라거나 싫어함이 없고, 생사에도 관계함이 없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라고 물으니 “미생전(未生前)입니다.”라고 답하는 꿈속의 대화를 편지로 보내어 마음공부에 발흥토록 한다.
일기법을 제시하여 시행토록 한 곳이다.
원기10년(1925) 음력 3월에 일기법을 비롯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 발표하고, 익산본관에서 원기10년(1925) 음력 5월 6일에 제1회 정기훈련(을축하선)을 시행한다. 소태산은 당시 견지동 14번지에 거주하는 이공주에게 보낸 을축(1925년) 음력 2월 20일자 편지에서 “매일 일기(日記)하는 법식(法式)을 보내니 이대로 일기하였다가 후일 상고(詳考)하기로 합시다.”(앞의 책)라며 일기 시행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경성회원 이공주는 ‘일기법의 첫 시행자’가 된다.
또한 원기13년(1928) 음력 5월 ‘단원성적조사법’을 제정하여 매월 16일은 단회날로 정하고 매월성적조사를 하도록 한다(〈월말통신〉제1호). 이후 음력 8월 17일에 소태산 대종사 상경하자 이공주는 ‘단원 매월매일 성적조사표’ 인쇄비용을 부담하며, 음력 9월 16일 경성출장소 단회에서 소태산을 모시고 이를 실시한다(〈월말통신〉제7호 광고). 이처럼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은 ‘단원 매월매일 성적조사’ 일기법의 첫 시행지이다. 그리고 계동 거주 이공주는 이를 실행한 감상담 ‘매일 성적조사법 이행에 대하여’를〈월말통신〉제19호(원기14년 9월호)에 발표한다. 그렇다면 계동 이공주家는 ‘일기법 시행의 시초요 시범 도량’이라 할 것이다.
계동연구회로서 예회와 야회의 공부처이다.
이공주家는 사가이면서도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 이외에서 예회를 진행한 곳이며 또한 야회를 연 곳이다. 일명 ‘계동연구회’로서 공가로 사용하였다. 이공주의 집에서 원기14년(1929) 음력 1월 7일에 연 ‘계동 야회’는 불법연구회 야회의 첫 시도이다. 이공주가 주재하는 계동 야회는 예회의 연장으로 한 명이라도 대상이 있으면 진행했다.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으로 ‘강자·약자의 진화상의 요법’을 부연한 곳이다.
원기13년(1928) 윤 2월 26일(4월 16일) 오전 10시경 계동 이공주家 사랑채에서 예회를 연다. 이때 법설 중 하나가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다. 약자인 갑동리와 강자인 을동리로 비유하여 약자가 강자를 대할 때 지혜로 헤쳐나가는 길을 명시하였고 강자가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도 제시한다. 약자인 식민지배의 조선이 집단 지혜(공동 연구력)를 통해 강자되는 길을 밝히며, 일제(日帝)로 상정되는 강자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강자로 진화해야 그들의 미래도 열리는 도를 제시한다. 원기13년(1928) 음력 5월에 발행한 <월말통신> 제1호에 이공주 수필의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 게재되며, 최초로 공식 기록된 소태산의 법문이다.
경성회원의 발원장 제출처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13년(1928) 음력 6월 6일에 계동 이공주의 집에서 예회를 보며 회원 각자에게 ‘급선무의 발원장’이라고 제목을 쓰고 각자의 소망을 제출토록 한다.
급선무의 발원장을 받아본 소태산은 “만일…보통사람들의 무리한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였다면 나도 당장에 만족할 대답을 줄 수가 없을 터인데 다행하게도 내가 능히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을 알기가 소원이라 하였으니…내 그대들의 소원대로 가르쳐 주리니, 오늘의 신성만 변치 말라(청하문집 1,『금강산의 주인』)”라고 당부한다.
이처럼 이공주家는 소태산 대종사가 이공주에게 ‘도덕박사’의 서원을 세우고, 성불의 기관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도록 촉구한 곳으로 기념해야 한다. 또한 미생전의 일원상 경지를 격동시킨 사서(師書, 편지)의 정을 느끼는 도량으로 가다듬고, 일기법을 제시하여 시범 시행토록 한 ‘일기 시행처’로 가꾸며, ‘계동연구회’라 칭하여 예회를 본 ‘마음공부의 법석’으로 빛내야 할 것이다.
특히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 설해진 현장 법설을 통해 인류가 나아갈 세계평화의 길을 도모하는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의 도량으로 삼으며, 발원장을 제출토록 한 뜻과 야회를 처음 시작했던 공부심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이다.
이여원 편집장
5월 22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