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어 간다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잘 연결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나답게 사는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하고, 억지 관계에 자신을 소모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각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얕아졌고, 대화는 넘쳐나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곳은 줄어들었다. 우리는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조금씩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은 관계를 끊어내는 기술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상처 주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불편함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다르면 차단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떠난다.
철학자이자 영성가인 켄 윌버는 『무경계』에서 의식의 성장 단계 중 ‘켄타우로스’ 수준을 주목한다.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처럼,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된 단계다. 그가 말하는 삶의 근본적인 의미는 외적인 행위나 소유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빛을 발하는 내적인 흐름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빛은 세계로, 친구에게로, 인류 전체로, 나아가 무한 그 자체에까지 이른다. 빛은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발산시키고 관계 맺는 가운데’ 비로소 그 빛은 완성된다.
몸과 마음의 분열을 넘어선 사람은 오히려 타인을 향해 열린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타인의 부족함도 이전보다 부드럽게 바라보게 된다. 내 존재를 긍정할수록 세상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이 대목에서 원불교의 지공무사(至公無私)가 떠오른다. 흔히 사사로운 마음 없이 공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라 해석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지워버리는 희생이 아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내 삶이 공동체와 이어져 있고, 나의 기쁨과 슬픔 또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켄 윌버가 말한 존재의 빛이 세계로 흘러나가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지공무사의 삶과 다르지 않다. 통합된 자기에서 흘러나온 빛이 관계 속에서 완성되듯, 지공무사 역시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 더 큰 나로 연결되는 길이다.
자연을 보면 알 수 있다. 봄이 오면 나무는 혼자 피어나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과 비와 흙의 도움 속에서 잎을 틔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진짜 성숙은 혼자 빛나는 일이 아니라 연결되어 가는 일인지 모른다. 깨달음 역시 멀리 있는 특별한 경지가 아닐지 모른다. 나와 남,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를 갈라놓던 단단한 벽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잘 연결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5월 2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