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매재자연휴양림 희사한 현철호 회장
“원불교 정신으로 운영한다면 세상을 위한 ‘치유’와 ‘보은’의 숲으로, 멋진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 사람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도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의 말에는 살아온 시간이 담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품이, 그 사람의 말에 담기는 까닭이다. 경기도 양평 설매재 자연휴양림을 원불교 서울교구에 희사한 현철호 회장(네네치킨, 법명 성제)도 그랬다. 자신의 삶을 과장하지도, 희사를 특별한 공로처럼 내세우지도 않는 그의 말에 그의 삶이 담겼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설매재자연휴양림 희사에는 그가 긴 세월 품어온 삶의 질문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설매재자연휴양림 수증 봉고식(111.5.9)에 참석한 현 회장을 만났다. 설매재의 오후 햇살이 그의 얼굴에 안온하게 담겼다.
‘보릿고개’ 기억이 만든 기업가 정신
그는 대학 졸업 전까지 서른 번이 넘는 이사를 경험해야 했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었던 아버지는 6·25전쟁 이후 연천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지만 생활은 늘 불안정했다. 그는 훗날 가족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축산학과에 진학하며 농촌 정착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사업의 길로 방향을 틀게 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왜 정작 먹을 쌀이 없어 보릿고개를 겪어야 하는가.” 그 시절 소작농 구조의 한계를 보며, 그는 우리나라에도 세계 곡물 시장을 움직이는 ‘카길(Cargill)’과 같은 글로벌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식량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우리 민족 역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이후 그가 사업을 경영하고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중요한 삶의 토대가 됐다.
“내 힘으로 이룬 것은 없다”
그는 개인의 성공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까지는 국가 시스템과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명문대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똑똑해서라고 생각하는 ‘자기 능력주의’를 경계한다. 만약 사회 기반이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성공’의 끝이 개인 축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빈손으로 태어나 부모의 돌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살아온 만큼,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가진 것들은 본래 사회의 것이며,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삶의 순환이라고 그는 담담히 말한다.
공공적으로 운영해야 ‘숲의 가치’가
살아난다는 그의 생각은
“원불교는 맡기면 제대로 한다”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결국 현 회장은 설매재를 맡길 곳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원불교’를 선택했다.
우연 자연한 원불교와의 인연
그와 원불교와의 인연은 우연 자연하게 이어졌다. 아들의 성지송학중학교 진학, 대구 한울안중학교 설립 지원, 네네봉구스 작은도서관(상계교당) 후원 등 삶의 여러 갈림길에서 원불교와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한 가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 추진이 무산됐을 당시, 이미 전달했던 기부금을 이자까지 계산해 다시 돌려준 교무들의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이미 받은 기부금이니 편하게 사용해도 되는데, 원불교는 아니었어요. 그 깔끔함과 정확함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에게 원불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종교’가 됐다.
설매재, ‘쉼’과 ‘회복’을 위한 공간
현 회장이 설매재를 매입한 것은 2017년이다. 약 20만 평(635,844㎡) 규모의 자연휴양림이었다. 경제성보다 공공성이 강한 공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재충전하는 공간이면 좋겠다.” 이 생각이었다.
설매재는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도 해발 500~700고지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산책길과 전망대, 데크길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쉼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는 공공적으로 운영해야 ‘숲의 가치’가 살아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원불교는 맡기면 제대로 한다”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결국 현 회장은 설매재를 맡길 곳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원불교’를 선택했다. “원불교 정신으로 운영한다면 화담숲보다 더 멋진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종교, 원불교
결국 그가 원불교에 조건 없이 희사한 이유는 ‘신뢰’였다. 그는 원불교가 오랜 시간 보여준 투명성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했다. 교무님과 교도들이 자발적으로 배수로를 정비하고 공간을 정갈하게 가꾸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현 회장이 바라는 설매재의 미래도 분명하다. 그는 설매재가 세상을 위한 ‘치유와 보은의 숲’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쉼’과 ‘회복’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누구나 찾아와 자연 속에서 쉬고 치유 받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편안히 쉬었다가 “알고 보니 원불교가 운영하는 곳이었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종교가 사회와 상생하는 가장 건강한 방식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살아간다는 것
현 회장은 이제 ‘더 큰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 비우고 내려놓으며,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을 끝까지 읽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문장 하나가 마음에 남고, 어느 순간 삶과 연결될 때가 있거든요.”
자기 삶에 대해 묻는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게 된다고 현 회장은 말한다. 설매재 역시 그런 삶의 연장선 위에 있다. 결국 그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잠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질문을 건네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삶의 여정의 휴식 같은 공간. 비록 끝내 명확한 답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질문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대로 온전한 삶임을, 그는 안다.
에필로그
그가 몇 해 전 심은 나무가 제법 자라났다. 얼마나 대견할까. 어린 나무 곁에서 사진을 찍는 현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다. 그렇게 설매재의 숲에 바람이 햇살이 사람이 머문다. 그대로 하나다.
글·사진 이여원 편집장 / 편집 김주희
6월 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