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우발적 변이
‘마음먹음에 따라’ 어떠한 관계·상황도 정해진 논리를 뛰어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일체유심조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의 유구한 생존법칙을 설명한다. 다윈이 1859년 진화론을 발표하자, 우주만물은 신이 단번에 창조한 것이라고 가르치던 당시 세상은 뒤집어져 버렸다. 약 200년 전 스피노자가 당대의 종교·철학에 던진 충격에 비견될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 것이다. 창조주 교리에 위협을 느끼는 기독교와 진화론의 심각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다.
반면, 불교·원불교는 “모든 존재에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원인과 조건에 의해 변화한다”는 ‘연기(緣起)’의 사유에 바탕하므로,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진화론의 생명관과 합치한다.
진화론은 ‘자연선택’과 ‘우연적 변이’라는 두 가지 설명으로 구성되는데, 자연선택론은 생존경쟁에서 적응에 실패한 약한 개체들은 소멸하고 적응한 개체만 살아남아, 생존한 개체의 형질(DNA)이 대를 이어 내려가며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는 설명이다. 진화론의 다른 한 축인 ‘우연한 변이’는 유전자 정보가 무작위로 변하거나 우연한 사건에 의해 유전자 구조가 달라지며 진화의 추진력이 된다는 설명이다. ‘우연적 변이론’은 이론을 포기한 듯한 설명 같지 않은가. 위대한 진화론이 어찌 이렇게 논리를 포기한 설명을 할까 하는 의문이 원불교의 ‘진급’과 ‘인과론’에 대한 의문과 대비된다. 나의 수행생활에서 가장 쉽게 삼키지 못했던 ‘은생어해·해생어은’ 부분이다.
역경이 오히려 깨달음의 복이 되거나 반대로 맹목적인 순경이 도리어 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인 줄은 알겠으나, 어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와야 하는 인과의 이론이 될 수 있을까. 진화론의 ‘자연선택’ 설명이 쉽게 이해되듯이, ‘인과’도 ‘은생어은·해생어해’, 즉, 선(善)이 은혜로운 결과를 주고 악(惡)이 해독을 낳는다고 하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이해·수용이 될 것인가. 오랫동안 머무르던 나의 우매한 의문은 눈을 크게 떠 ‘심신작용에 따라~’라는 구절을 이어 붙임으로써 서서히 걷히었다. ‘마음먹음에 따라’ 어떠한 관계·상황도 정해진 논리를 뛰어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일체유심조.
진화론이 ‘우연한 변이’라는 궁색한 설명으로 돌파하려는 모습에 비해, 콩이 팥이 될 수도 있고 팥이 콩도 되는 ‘일체유심조의 인과’는 오래 고심했던 만큼 머리도 마음도 시원하게 열어 주시니 그 감사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7월 24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