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의 심성

우리 삶의 이야기가 서로 응하고  통할 때 아름다운 대화가 된다

2026-08-11     한울안신문

‘법 그릇이야’, 또는 ‘도의 종자(種子)야’ 하는 이야기를 가끔 하게 된다. 법 그릇은 어떤 뜻으로 말하는가? 또 도의 종자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말하며 마음속에 새겨야 할까 하는 생각에 내 자신 스스로 침묵할 때가 많다.
수행자의 기본은 굴기하심(屈己下心), 요즘 말로는 별로 쓰지 않는 언어지만 수행자는 ‘나를 낮추어야’ 거기서부터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지내보니 법의 그릇도 수행자들이 서로 관계가 좋을 때 하는 이야기이고, 도의 종자라는 것도 때와 계절에 맞아야 식물이 싹 트고 생존력이 강해지는 성장처럼, 우리 삶의 이야기가 서로 응하고 통할 때 아름다운 대화가 된다. 반대로 내 생각이 다를 때는 마음의 피로감을 느낀다.
도심(道心)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이치와 사리에 맞고 쉽게 마음으로 헤아리며, 그 말이 내 마음에 새로운 의미를 밝히는 기쁨으로 받아들여질 때, 바로 도심이로구나 하며 세월을 낚아 왔다. 내가 좋아하는 수채화가 조셉 쥬크빅 화가가 있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맑고 표현력이 왕성해 호기심이 일었다. 어느 날 물감을 사놓고 표현하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화가 지망생이 나에게 그림 실기와 비법 등을 연수받은 경험담을 전했다. 선생도 붓질을 하다 실수할 때면 “오히려 잘된 일이지. 차라리 이렇게 되길 바랐어” 하고 스스로 인정한다고 한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 걸음 넘어서는 기질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정산종사께서는 학인들을 수행자로 비교하셨는데, 어느 날 학인이 “욕심으로 구하여도 얻어지나이까” 여쭙자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크게 와 지나니라”라고 답하셨다. 어찌 보면 관심(觀心)과 무심(無心)의 경계 속에서 내가 “이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평정심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8월 14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