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AI시대의 정신개벽

2026-09-01     한울안신문

중국이 로봇을 잘 한다는 것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정밀 조립 응용을 넘어서, 사람과 같이 권투도 하고 심지어 100m를 사람보다 더 빨리 뛰기도 한다. 사람 대신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무인 드론의 위력이 처음으로 실전에서 증명되었다. 전 세계가 무인 전쟁 능력 향상을 위해서 야단법석들이다. 아마도 드론과 더불어 AI 로봇이 전쟁을 대신하고 사람들이 로봇에게 혼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한국과 같이 50개가 넘는 북한 핵이 근거리에 있는 상황에서 AI 전쟁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물질이 많은 발전을 해왔지만, AI는 특별하다.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겨왔던 ‘지능’을 기계가 가지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동차, 다이나마이트, 컴퓨터 등 물질의 발전에서 항상 순, 역기능이 있어 왔지만, AI는 과거의 물질 발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즉,  물질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수십만년 역사의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 지난 100년에 비로소 물질 개벽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십만 년의 현대 인류 역사에 비해서 1시간에서 1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100년안에 말이다.
100여 년 전,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구호를 인류에 던져 주셨다. 놀랍게도 마치 다가올 AI시대를 예측이나 한 듯이 말이다. 그리고 물질 개벽에 걸맞는 정신 개벽이 꼭 필요하다고 천명하셨다. 정신개벽이 되지 않으면 아마도 인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언같이 들린다. 

그렇다면 지금의 원불교는 AI로 촉발된 물질 개벽의 시대에 어떤 정신개벽을 실천하고 인류에게 가르쳐야 할까? 그동안 정신 지도자들,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이런 성인들의 가르침이 있음에도 원불교의 정신개벽이 필요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르침을 내놓을 때는 물질개벽 전이기 때문이다. 불의 이용부터, 인류의 물질의 발전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지만, 물질개벽은 지난 100년간 발전된 열 통계 역학, 양자역학, 반도체, 컴퓨터, 분자 생물학 때문이다. 놀랍게도 원불교의 역사와 같은 기간이다. 물질의 기본 구조, 동작 원리를 이해했으므로 비료도 만들어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태풍도 점치고, 질병도 치료했다. 이제 암도 극복하려고 한다. 우주가 음양으로 되어 있다던지, 신이 창조했다는 우주관은 아름답지만, ‘물질개벽’시대에 적합한 세계관은 아니다. 예전의 많은 가르침은 물질 개벽 시대에는 불완전 하거나,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것이 원불교의 ‘정신개벽’의 눈이다. 100여 년 전 시작된 원불교는 물질개벽 시대에 통하는 정신개벽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이다.
몇 가지 실천 사항을 제시해 본다. 첫째, 이 땅은 죄의 땅이므로 이제 빨리 저곳으로 가자는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치통, 복통의 근본 원인을 모르던 오랜 시절 만들어진 염세적 세계관은 ‘물질개벽 시대의 정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1950년대를 풍미했던 흑인 영가 ‘The saints go marching in’이나 반야심경의 마지막 소절,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그런 세계관의 산물이다. 장례식에서 자주 불리는 이 주문은 둘 다 빨리 이 지긋 지긋한 고통의 땅을 ‘건너가서’ 낙원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에 비해 원불교에서 자주 불리는 성스런 주문인 성주, 즉 ‘만세멸도상독로, 보보일체대성경’은 얼마나 놀라운 개벽의 정신인가? 천지가 만들어 주는 모든 것들이 은혜 투성이다. 무한 시간을 이 땅에서 나고 죽는 뭇 생명이 생사기로에서 끊어진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궁화 맺힌 이슬과 같이 ‘상독로’, 즉 변하지 않는 이슬과 같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 지구, 이 천지에서 매 걸음마다 성인의 걸음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성주의 가르침이야 말로 물질개벽에 걸맞는 정신개벽의 우주관, 생명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정신개벽을 위해서는 정신수양만으로는 부족하고 물질 원리를 포함하는 사리를 연구하고 이들을 실생활 응용하는 것, 그리고 다시 정신 수양으로 돌아오는 무한궤도를 도는 삼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도그마, 즉 일생을 산속에서 ‘깨침을 추구하는’ 형태나 과학, 기술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믿음에 빠지는 것, 그리고 실천만이 가치가 있다는 좁은 도그마에서 벗어나, 세 가지를 원만하게 돌고 돌아서 진급하는 것이야 말로 물질 개벽 시대에 인류가 지향하는 ‘정신개벽’의 실천 항목이라는 생각이다. 
원불교 교도들이 많이 암송하는 ‘일원상 서원문’은 바로 이러한 삼학을 가장 간략하지만 심오하게 풀어낸 정신개벽의 길이다. 원불교의 신앙의 대상인 ‘일원상’은 기복을 구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바로 삼학을 통한 정신개벽을 하겠다는 다짐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원불교 교도 여부에 무관하게 인류가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인생의 요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9월 4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