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
성품은 생각이 개입되지 않고 그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다 상징적 모양으로 표현하면 바로 일원상이다
대종경을 봉독할 때면 항상 가까이 두고 함께 보는 복사본이 있다. 아직 정식 책으로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초창기 소식지에 실렸던 대종사님 수필법문을 묶은 것이다. 수필법문은 마치 그 당시 상황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여, 대종사님을 직접 모시고 법문을 받드는 것 같아 더 쉽게 마음에 다가온다.
며칠 전 <대종경> 부촉품 14장 수필법문을 읽다가 마음 깊숙이 큰 울림이 있었다. 부촉품 14장은 대종사님의 최후 법문으로, 원기28년 5월 16일 일요일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하신 법문이다. 그리고 이 법문을 하신 지 18일 후 열반에 드신다.
지금의 <대종경>에는 빠져 있지만,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신 부분이 있다. 바로 견성에 대한 법문이다. 소태산 대종사 말씀하신다. “공부가 미숙하여 견성을 못하였으면 철모르는 아이 시절과 같고, 공부를 많이 하여 견성을 하면 슬기로운 어른과 같다 하니라.”, “우리의 견성법은 만고의 대도며 인생의 대 철학이건마는, 견성의 필요성을 느끼는 자 귀하니 실로 답답한 일이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랴?”, “자고로 수도하려는 사람이 견성을 해야 진리를 알게되고, 진리를 알아야 인과인연법도 알아지고 취사심도 생겨나며 친소심도 없어져서 자타 없는 삼매행자가 된다. 비컨대 우리가 견성을 하는 것은 대목이 집을 짓는데 먹줄과 잣대 같아서 인도를 밟아 가는데 없지 못할 최상승법이니 어서 부지런히 배우고 닦아서 견성도인 되기를 노력할 지어다.”
견성이란 무엇일까? 바로 성품(性品)을 보는 것이다. 성품이란 생멸이 없고 거래가 없고 분별 주착이 없는 우리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언어나 개념으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분별 이전의 마음을 말한다. 성품은 생각이 개입되지 않고 그 어디에서도 묶이지 않는다. 상징적 모양으로 표현하면 바로 일원상이다.
이 성품의 마음은 누구나 조금만 설명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대종경 선외록>에 “앞으로 인지가 많이 발달되면 십여 세만 넘으면 대개 초견성은 할 것이요, 성불을 위하여 큰 공력을 들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들이 마음공부를 함에 있어 견성은 필수요, 견성을 해야 공부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10월 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