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나요
우리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 공부인들은 물질의 개벽도 일원상의 위력으로, 정신의 개벽도 일원상의 수행으로 지성으로 해보자.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믿고 또 믿고.
“(전략)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후략).”
많은 재가교도들은 일원상 서원문의 이 부분을 삼학 공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학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인데, 필자도 일원상 서원문의 공부를 부촉한 이 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학 공부를 녹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이런 의문이 생겼다. 일원상 서원문의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가 삼학의 ‘정신수양’과 같은 의미일까. 또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가 삼학의 ‘사리연구’와 같고,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가 삼학의 ‘작업취사’와 같을까.
다시 앞의 일원상 서원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1.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라는 말씀은 삼학 공부의 전제 조건으로 일원상 진리를 신앙해야 함을 의미한다. 2. 세 가지 공부에 ‘원만하게’라는 단어가 들어 있고, 정신수양과 작업취사에 해당되는 공부에 심신 즉 육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또 삼학에서 사리연구와 작업취사는 육근을 직접적으로 운용(작용)해야만 하는 공부이다. 따라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모두 육근을 원만하게 운용하는 공부인 것이다.
한편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 법어’에서 (소)원상 여섯으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육근 운용의 표준을 주셨다. 우리의 안이비설신의를 사용할 때에는 이 원상의 이치가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것이므로 육근 작용(운용)할 때에도 이 원상의 이치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일원상 서원문에 있는 삼학 공부의 진정한 모습은 일원상 법어에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일원상서원문을 분석해 보면 1.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 원불교인들은 꾸준히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라는 전제 조건이 있고, 세 가지 모두 ‘원만하게’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또 정신수양과 작업취사 대신에 ‘심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삼학에서 사리연구와 작업취사의 공통점은 육근 운용(작용)과 연관되어 있다. 육근 운용(작용)을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 법어’에서 (소)원상 여섯을 표준해 주셨다. 우리의 안이비설신의를 사용할 때에는 이 원상의 이치가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것이므로 육근 작용(운용)할 때에도 이 원상의 이치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서원문에 있는 삼학은 삼학과 일원상 법어가 병진되어 표현된 것이 아닐까.
3. 심(mind)과 신(body 일원의학)을 병진하는 삼학은 몸(물질)과 마음이 건강하여 수양이 지극하면 내부(마음 공부)와 외부(사은 보은)가 서로 통하여 천인 합일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안면에 광채가 가득해 참으로 아름답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원한 강자이고,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게 되는 것이다.
원불교는 미래 종교일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 회상은 지나간 회상들과 달라서 자주 있는 회상이 아니요 원시반본(原始反本)하는 시대를 따라서 나는 회상이라 그 운이 한량 없나니라” <대종경> 전망품 30장.
우리 원불교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를 따라서 나는, 그 운이 한량 없는 ‘미래 종교’인가. 원시반본은 원래의 시작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선천시대는 분열하면서 퍼져 나간 시기였고, 이제부터 오는 후천시대는 다시 통일되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시기란 의미이다. 원시반본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과학 기술, 의학, 제도적 민주주의 등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형태로 해석한다. 현대의 문화도 단순히 과거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전 세계의 다양한 이질적 문화들이 실시간으로 섞이며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융합)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현대적 관점’에 맞는 원불교 교리를 내 놓으셨다.(전망품 30장) 지금 우리 원불교 정전과 대종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러한 ‘현대적 관점’을 충족할 교리의 해석(시대화,생활화,대중화)을 내놓아야 원불교가 미래 종교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시반본’ 개념은 조로아스터교, 구약 성경, 인도의 힌두교, 고대 이집트 종교, 그리고 중국의 역학(상고 시대 복희 팔괘) 등의 고대 종교(회상)들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역학(복희 팔괘)은 다른 고대 종교들과 많이 다르다.
복희 팔괘는 우주의 만물을 음(--,현대 이진법의 0)과 양(一, 현대 이진법의 1)이라는 두 가지 기본 신호의 조합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현대 컴퓨터 정보 처리 방식과 구조적으로 완벽히 일치한다. 즉 세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코딩해 이해하려 했던 인류 최초의 시도인 셈이다.
음양을 기반으로 한 복희 팔괘(디지털 코드)를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퀀텀 코드)으로 개벽해 미래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 공부인들은 물질의 개벽도 일원상의 위력으로, 정신의 개벽도 일원상의 수행으로 지성으로 해보자.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믿고 또 믿고.
10월 16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