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해탈의 표준은 영생의 서원
정법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원 굳어진다면 ‘생사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전 기도를 마친 후 원로 교도님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 한 원로 법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번 생에 운전을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이 참 아쉬워요. 내생에는 꼭 운전을 할 겁니다.” 다른 원로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녀올 세상에는 운전할 필요가 없어요. 자동차가 알아서 다 해준답니다.”이 말씀들을 듣고 있자니, ‘원로님들이 평소 생사 연마를 잘하고 계시는구나. 그렇기에 이런 자연스러운 법담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짝 여쭈었습니다. “우리 법사님들은 생사에 해탈하셨네요. 내생 이야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시는 걸 보니….” 원로님께서 답하십니다. “해탈까지는 잘 모르겠고, 가면 오고 오면 간다는 이치는 평생 배웠으니 잘 알고 있지요.”
요즘 교단은 법위사정이 한창입니다. 지난주 지구에서도 법위사정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모든 법위가 다 중요한 사정 대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재가교도의 ‘법강항마위’ 승급 사정이야말로 가장 신중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정전》법위등급에서 대종사님은 “법강항마위는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의 위”라고 그 기준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항마 도인은 생사 해탈을 이룬 도인입니다.
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생사에 해탈했는가?’ 스스로 답해봅니다. ‘생사의 이치가 진리임을 모십니다. 낳고 죽는 데에 끌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생을 알고 영생을 알았으니, 세세생생 대종사님의 정법을 떠나지 않기를 서원할 뿐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사는 가고 오는 것이니, 해탈하여 영생을 준비해야 하느니라.” 결국 생사 해탈이란 ‘내생의 서원, 나아가 영생의 서원이 세워져 있는가’가 표준이 될 것 같습니다. 가면 오고 오면 가는 생사의 이치를 확연히 알았으니 자연히 내생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정법을 떠나지 않겠다는 이 서원이 천 번, 만 번 다져지고 굳어진다면, 생사 해탈을 넘어 ‘생사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원로님들께 마지막으로 여쭈었습니다. “내생에도 대종사님 법 떠나지 않으실 거죠?” 환하게 답하십니다. “그럼요. 내생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요.” 우리 원로 법사님들은 이미 생사 해탈을 하신 것 같습니다.
10월 2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