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건너는 밤은 없다

내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실은 날마다  수많은 동포의 손을 빌려 하루를 건너고 있다

2026-10-27     한울안신문

달력을 한 장 넘기면 11월이다. 남은 장은 이제 두 장뿐이다. 11월은 가을이라 하기엔 늦고 겨울이라 하기엔 이른, 그 사이에 서 있는 달이다. 입동이 지나면 나무는 마지막 잎을 내려놓고, 해는 하루가 다르게 짧아진다. 낮이 줄어드는 만큼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얼마 전 정토님들과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함께 나누었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이 버려진 펭귄 알을 품고, 알에서 깨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노든은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둘 잃으며 살아온 코뿔소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닌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을 품게 된다. 노든 역시 처음부터 누군가를 지켜 줄 만큼 강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수많은 이들이 함께 건너 준 밤 덕분에 살아남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밤을 이제 어린 펭귄에게 건네준다. 받은 은혜가 다시 은혜가 되어 흘러가는 것이다.
『정전』동포은에서는 동포의 은혜를 알려면 먼저 동포가 없어도 이 생명을 보전하여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하신다. 답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른 쌀 한 톨에도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 내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실은 날마다 수많은 동포의 손을 빌려 하루를 건너고 있다.
그러니 동포은은 ‘서로 도우며 살자’는 다짐이기 전에, 내가 이미 수많은 이들의 손에 기대어 밤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공부다. 내가 무사히 아침을 맞은 날에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는 내 몫의 밤을 함께 지새워 주었다. 그 은혜를 알아차릴 때, 우리도 노든처럼 누군가의 긴 밤 곁에 앉아 줄 수 있게 된다.
우리 교당에서는 11월 1일부터 50일 기도가 시작된다. 한 해 동안 받은 은혜와 미처 다하지 못한 마음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정성으로 채워 가는 정진의 시간이다. 
기도는 혼자 앉아 하는 것 같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서원으로 앉은 도반들이 있기에 이어진다. 오늘 밤 올리는 기도 한 줄이 어딘가에서 홀로 긴 밤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밤이 길어질 때 누군가 그 곁에 앉아 주리라 믿는다.
 

10월 30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