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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한울안이 만난 사람 / 나포리교당 석산 이진수 교무
다선일미(茶禪一味), 차 한 잔에 감로수 한 모금
2019. 10. 09 by 강법진 편집장

[한울안신문=강법진]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나포리 홍차가게’를 찾았다. 웬만한 도심에서도 보기 드문 홍차가게를 나지막한 산 능선이 감싸 안은 군산의 원불교 수행공동체 안에서 만났다. 선방이 다실이고, 다실이 곧 기도실이라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정신으로 30년간 차 문화를 개척해온 나포리교당 석산 이진수 교무. (사)국제티클럽 총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국제차문화학회 회장이란 명패가 그의 지난 인생을 대변해준다.

차와의 만남은 “우연이 필연이 됐다”며 수많은 차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하고, 국제 차(茶) 축제를 개최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늘 원불교 교무로서 선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 “차의 90%는 선이다”라고 명쾌한 답을 들고 그가 최근 차인들을 위한 좌선 입문서 <차(茶)와 선(禪)>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도의 궁극은 참선과 명상을 통해 본래의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차와 선의 공덕은 같다

<차와 선>은 28번째 저서이지만 기초학을 중시하는 그가 특히 심혈을 기울여 펴낸 신간이다. 그는 “차에 대한 입문을 마치고, 보다 고차원의 차 생활과 정신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선학(禪學) 입문서이자 좌선 지침서이며 다도 요체를 해설한 안내서이다”고 소개하며 “달마대사 이후로 차와 선은 둘이 아닌 하나임이 명백해졌고, 선의 맛과 차의 맛이 둘이 아님을 여러 선사들과 차인들이 밝혔다. 게다가 차와 선은 일종의 운명공동체였다. 선풍이 쇠할 때 차도 쇠했고, 차가 성할 때 선도 성했다”고 말한다.

선가의 구도자 중에는 다인이 많다. 그는 “위대한 조사치고 차인 아닌 사람이 없었고, 위대한 차인치고 마음공부에 게으른 사람이 없었다”며 “차와 선의 역사를 알고, 참선과 명상의 원리와 방법을 익혀 차 생활의 매순간에 접목시켜야 진정한 차의 맛을 느낄 수 있고, 차를 통한 깨달음과 행복도 맛볼 수 있다”고 오랜 수행을 통해 얻은 깨침을 전달했다.

때문에 그는 소태산 대종사가 밝힌 좌선의 공덕과 차의 공덕은 같다고 말한다. 선을 하는 사람이 수승하강을 통해 나오는 감로수는 차를 마실 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오미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면 단침이 솟고, 한 모금 삼키면 그것이 감로수라 한다. 하여 차를 한다는 것은 무시선 무처선이나 다름없다고. 그가 다음 출판도서로 ‘좌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경제학을 꿈꾸며

원불교 교무로서 차 문화의 외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황무지였던 차 문화를 세상에 드러내게 한 것도 그이고,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를 신설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게 하기까지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했다. “초기에는 국내에 차 교재나 이론서가 없어서 일일이 과거 문헌을 찾아 프린트해서 교재로 썼다. 차는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음다법이 다르다”며 개척의 역사는 길었지만 즐기면서 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는 우연이 필연처럼 다가온 집안의 내력도 한몫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를 와서 18명의 제자와 더불어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는데 그 중심 인물이 그의 선대 어른인 이유회, 이강회였다. 그 연유로 2년 전, 그는 <다산 정약용과 이강회와의 교우관계 고찰>이란 논문을 저술해 학회지에 등재했다.

어디서나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학문을 하고 예를 갖추는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이었고, 수행자로서의 길은 매일 새벽 정한수(청수)를 떠놓고 기도 올린 어머니의 불심이 우연 중 필연으로 그를 원불교로 이끌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포리 수행공동체를 둘러보았다. 시골의 한 농가였던 그 자리는 옛 모습을 상상도 못할 만큼 바뀌어 있었다. 그의 차 인생은 처음부터 30년의 로드맵으로 설정돼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 지어질 차 박물관(가칭)의 조감도를 보여주며 “이곳 박물관은 전통문화의 집산지이자 역사의 보고이며, 신앙수행의 공간이 될 것이다”면서 “앞으로 유료직원 10명 정도가 이곳에서 일하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 내가 꿈꿔온 신앙·훈련·문화·지식·경제공동체가 완성이 된다. 앞으로는 문화경제학으로 가야 한다”며, 오랜 연구를 통해 교법을 접목한 사은다례와 삼학선차의 기초학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나포리 수행공동체에는 법당, 연구실(세미나실), 선실, 다실 등이 갖춰져 있었고, 그는 여전히 초창기 모습 그대로 직접 손빨래와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수행인으로 살고 있었다.

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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