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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일원의향기/ 부천교당 임선은 교도
당신은 부처답게 살고 있나요?
2020. 04. 08 by 우형옥 기자

[한울안신문=우형옥]105년 전 4월 28일,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이뤘고 원불교가 태어났다. 매년 4월이면 우리는 대각개교절을 봉축하며 개교표어를 되새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속 조선불교혁신론을 주창하며, ‘정신개벽’을 통해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모든 생령을 낙원세계로 인도하자 말했던 새 종교 원불교. 이러한 개벽의 종교에 빠져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우리의 교법을 펼치는 이가 있다. 성주 소성리, 광화문 광장, 전남 영광 등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교법의 대사회화에 앞장서고 있는 부천교당 임선은 교도를 만났다.

 

사회교화의 씨앗

학창 시절 철학과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부천에서 생협활동과 대안학교 교육을 하며 지냈다. 이후 부천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던 정치원 교무를 만나 원불교를 알게 됐다. “교무님이 원기78년인가? ‘부천 은혜의 집’을 열어 노동자 교당을 만드셨어요. 처음에는 지역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함께 의리로 입교를 했는데 원불교를 알면 알수록 감동의 극치였습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는 그의 마음을 울렸고 대종사는 그에게 마음공부와 사회개혁을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얼마 안 가 교당은 사라졌지만, 당시 은혜의 집에 입교한 교도들과 함께 “원불교는 정말 명품 종교야! 정말 대박 종교인 것 같아!”라며 웃고 공부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은혜의 집이 사라지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당에 나가지 못했던 그는 8년 전부터 다시 교당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하며 교당만 열심히 나가던 그가 교법의 사회실천에 앞장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2017년, 익산 총부에 신년하례를 갔더니 원불교환경연대가 반백년기념관 앞에서 탈핵서명을 받고 있었어요. 탈핵서명의 취지가 사은에 보은하는 일이잖아요. 같이 공부를 하던 교도들과 ‘교법실천의 의미에서 저 서명을 부천교당에 해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길로 교도들과 환경연대를 찾아가 방법을 묻고 회원 가입을 했습니다. 환경연대에서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자발적으로 먼저 찾아온 교당은 처음이라고.” 성주 소성리를 처음 방문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사드(THAAD)를 막기위한 교당 기도나 행사는 참여했지만 직접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청운회 훈련이 성주에서 열렸고 3월 18일 처음으로 원불교 성지 중 하나인 성주 소성리를 찾았다.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추운 진밭교 다리 위에서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는 교무님과 교도님들을 보며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평화의 성자와 전쟁 무기라는 극명한 대립 속에 평화가 더욱더 절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사은에 보은하는 일이였고, 평화의 성자를 지키는 일에 열심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요훈품 34장을 마음에 심은 원불교평화행동(재가교도 중심의 평화운동단체)의 공동대표이자, 원불교 환경연대의 공동대표다. 26년 전 누군가 어렵게 뿌린 사회교화의 씨앗은 이렇게 자라났다.

 

만생령을 위한 종교

코로나 부처님 덕분에 조금은 한가해졌다며 웃음을 보이는 그는 하루 15분 불을 끄고 기도하는 천지보은 기도와 함께 가족들과 의식주 기본생활에도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다. 수행과 함께 일상에서 실천 거리를 찾는 것이다. “Simple Life를 실천 중입니다. 간단하고 정갈하게 살면 선택과 집중이 잘 됩니다. 생활이 단순할수록 천지에도 보은하고 나에게도 보은하는 거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는 것. 가까운 거리와 낮은 층계는 걸어 다니고 필요하지 않은 옷들은 사지 않는다. 반찬도 먹을 만큼만 한다.

“개교의 동기를 보면 우리는 일체 생령을 위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과 편리로 인해 너무 많은 생명을 멸종시켜 결국 인간도 살아남지 못하는 황폐한 지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평안만을 위하면 안됩니다. 원불교인이라면 지금! 바로! 일단 멈추고,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상생과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합니다. 그것이 바로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그는 교법의 실천과 사회화에 벽을 느끼는 교도들에게 말한다. “제가 알기로 성자들은 모두 그 시대, 그 사회에서 개혁을 부르짖는 혁명아였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서 최초 일념이고, 저녁에 눈 감으며 최후 일념이듯 날마다 생사를 오가며 치열한 구도 과정을 거치고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렇다고 성자만 개벽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종사는 따로 놀던 불법과 생활을 하나로 묶어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의 생활이 변한다면 사회는 개벽이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쑥스러운 듯 한마디를 더했다. “우리는 모두 부처입니다.”

그렇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부처라는 것. 깨달음의 달 4월, 우리는 대종사가 펼친 그 법을 잘 수행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부처답게’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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