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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원 고려인문화원 차인호 원장
[일원의 향기] 내 조국 한국에 살어리랏다
2020. 06. 10 by 우형옥 기자

[한울안신문=우형옥]6월 1일,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고 살 수 있도록 돕는 ‘원 고려인문화원’이 개원했다. 문화원이 있는 동네에 도착하자 곳곳에 러시아어 간판이 보이고, 서투른 발음으로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주민도 지나간다. 연수교당이 있는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이곳에는 4,000여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일원상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을 나타내는 삼태극이 그려진 작은 간판이 새겨진 곳에 올라가자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합장 인사를 하는 이가 있다. 원 고려인문화원 차인호(43·법명 원정·고려인 3세) 원장. 그를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고려인의 삶과 원 고려인문화원의 시작을 들었다.

우리는 외국인입니까?

고려인. 이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제의 탄압을 피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러 옛 소련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 민족의 후손이다. 차 원장의 할아버지는 연해주에 정착했지만, 그의 가족은 1937년 소련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하며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많은 고려인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입니다. 아픈 역사가 있지만, 시간이 흘러 많은 고려인 3세와 4세들은 모국어와 역사를 잊은 채 뿌리를 잃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 또한 어렸을 때는 잘 모르다가 88년 서울올림픽을 보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을 다니며 한국 역사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사범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공하고 있었죠. ‘화랑’이라는 고려인청년회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동안에도 그의 가슴에는 매일 태극기가 함께 했다. 1996년 우즈베키스탄에 완공된 대우자동차 공장은 한때 그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고 애국애족 정신에 관해 얘기했다. 그렇게 살아왔건만, 2018년 가족과 함께 들어온 조국 한국에서, 그는 그냥 한 명의 외국인이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대부분의 고려인 3세는 의사소통의 장벽에 부딪혀 공장 노동자로 내몰렸다. 다문화센터의 한국어 교육은 영어로 진행돼 배울 수 없었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는 점점 쌓여만 갔다. 뿌리를 찾으러 온 고려인들을 단순히 다문화로 묶어버리는 탓에 혼란을 겪는 일도 많았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러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까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고려인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불교와의 만남

그런 그가 원불교를 만난 것은 필연이었을까.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떡하니 연수교당이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 러시아 모스크바교당을 얘기하며, 원불교는 참수행의 종교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불교를 알고 있었는데 출근길에 연수교당이 보여 정말 반가웠죠. 그 길로 교당에 들어갔습니다. 교무님을 뵙자마자 ‘참 선량하신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민족종교가 아닙니까?”

이후 그는 매주 교당에 나갔다. 법회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지만, 수요공부방을 참석하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또 교무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연수교당 박법종 교무와 당시 휴무로 연수교당에 있었던 개포교당 이경환 교무, 원다문화센터 김대선 교무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일과 삶에 지친 고려인들과 함께 밥도 먹고 바다도 가며 말벗이 되어주고, 그들의 힘든 상황을 누구 보다 귀담아 들어준 사람들이었다.

“교무님은 미신이 아닌 바른 가르침을 주셨고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한 수행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받은 가르침을 한국말이 서툰 고려인들에게 러시아어로 알려줬습니다.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도 설명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참된 민족종교라고 알렸죠.” 점차 교당에 얼굴을 비추는 고려인들이 많아졌다.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고려인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던 그와 동료들은 점점 원불교에서 제대로 된 고려인문화원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원 고려인문화원 개원
인천 연수구 484-3 2층, 원 고려인문화원이 개원했다. 김대선 교무(왼쪽부터), 차인호 원장, 박법종 교무, 이경환 교무.

따뜻한 조국

결국 이들은 고려인들의 잃어버린 문화와 언어를 되찾아 주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원 고려인문화원을 서원하고 지난 5월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곳곳의 재가출가 교도들의 도움에 6월 1일 원 고려인문화원은 무사히 문을 열었다. 30여 평의 소박한 공간이지만 맑은방, 밝은방, 훈훈한방으로 이름 지어진 교실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나라 사랑이 곳곳에 묻어 있다. 태극기는 기본이고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와 직접 만든 고구려와 통일신라 시대 갑옷, 한복 등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현장학습, 노인을 위한 수업도 기획하고 있다. 또 사회에 어울리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인터뷰 내내 굴리던 염주를 멈췄다.

“제 서원이 뭐냐면요. 고려인들이 조국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 동포 모두가 이곳에서 평범하게, 따뜻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제 서원이고 원 고려인문화원의 바람입니다.”

 원 고려인문화원을 통해 이 마음 아픈 서원이 얼른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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