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울안신문
뒤로가기
일원의 향기
일원의 향기_돈암교당 송학진 교도회장
[일원의 향기] 달리는 법당, 일원택시
2020. 07. 01 by 우형옥 기자
돈암교당 송학진 교도회장

 

택시 안에 일원상을 모시고 다니는 것은

'나는 원불교인'이라는 걸 

항상 각인하기 위함입니다.

[한울안신문=우형옥]약속된 시간, 돈암역 1번 출구. 전조등을 깜빡이며 다가오는 택시 문을 열었다. 운전석에 앉은 그가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합장으로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의 옆에 까만 일원상, 89.7Mhz(서울지역 원음방송 주파수)가 적힌 파란 스티커 몇 장, 볼펜과 함께 벌어져 있는 수첩이 보인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항상 수행의 끈을 놓지 않는 돈암교당 송학진 교도회장. 그의 택시에 올라탔다. 

 

서품 1장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대종경> 서품 1장. 그는 30여 년 전, 인과에 대한 설법을 들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인과라는 것이 이렇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교법대로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 날 이후, 그는 진짜 교도가 됐다.

다혈질의 그가 원불교 훈련만 다녀오면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 그의 아내(김도전 교도)가 원불교를 찾았고, 아내가 입교하자 3명의 자녀도 함께 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딸은 돈암교당 어린이집 원장을, 아들 둘은 원불교와 관련된 복지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올해 대학생이 된 큰 손녀는 학생 법회를 꾸준히 다니며 교당에서 주는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입교도 하기 전에 전라북도 김제의 원평교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부부의 시작이 인연이었을까? 천천히 가지를 뻗던 나무는 일원가족이라는 튼실한 거목이 되었다. 참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가족들이 참으로 고맙다.

 

송학진 교도의 택시

상대를 위한 배려

그의 조수석 서랍에는 일회용 마스크가 한 묶음 들어있다. 회사나 식당에 깜빡하고 놓고 올 손님을 위한 배려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지만 그는 코로나도 바뀌어 가는 사회 모습 중 하나로 보고 적응하고 있다. 내부 방역은 물론 출퇴근 시간과 금요일이나 토요일 야간 위주로 업무시간을 바꾸고, 낮은 개인적인 시간으로 사용한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특히 그 이전부터 유념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편안하고 정직한 운행은 기본, 최대한 조심스러운 말투로 최소한의 대화를 하려 노력한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는 기사들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잠깐의 만남에 처음 보는 사람의 정치 성향이나 개인적인 가족사를 듣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그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들도 점잖아지는 것 같다.

“저도 처음에는 친근한 마음에 젊은 친구들한테 말을 놓기도 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툭 말했는데 제 말투를 오해하시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었죠. 화가 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손님들이 이해가 가고, 제가 유념해서 조심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습관이 들어 손님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존댓말과 고운 말을 씁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손님들도 좋아하시고 저도 좋죠. 이건 서비스업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기본 예의입니다.”

 

내가 곧 원불교

이렇게 서울 곳곳을 누비며 매일 다양한 손님을 만나는 그가 원불교를 알리기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하는 부분은 바로 자신수행이다.

“사람들한테 원불교를 알리려면 내 행동이 발라야 하잖아요. 택시 안에 일원상을 모시고 다니는 것은 원불교를 알리려는 이유도 있지만 저 자신에게 ‘나는 원불교인이다’라는 걸 항상 각인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직업인만큼 경계는 매일 나타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그가 운전대 옆에 일원상을 달고 수시로 수첩을 드는 이유다. 그는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 운전대를 붙잡고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어 마음을 잡는다. 퇴근할 때면 “오늘도 무사히 운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감사기도를 올린다. 운전 중에는 수첩을 통해 유무념을 체크하고, 순간 멈추지 못하고 잘못했던 일들은 바로 기록하여 일기를 작성한다. 핸드폰 잠금화면을 열면 주르륵 보이는 원불교 교전과 용어사전, WBS 원음방송, 원불교신문 등 각종 앱이 무시로 공부하는 그의 모습을 대신 한다.

쉬는 날에는 운전하며 흘려들었던 원음방송 라디오를 다시 듣고, 생업과 교당 일로 바쁜 와중에도 꼭 시간을 내 서울교구 도운회(개인택시 및 운수업 종사자 교도모임) 정기모임을 한다. 월 2회 봉도청소년수련원에서 힘들더라도 정기적으로 모여 설법을 듣고 공부를 해야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상시 공부를 할 수가 있다.

“몸은 힘들죠. 근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마음이 뭔가를 하려고 정하잖아요. 그럼 몸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친절한 원불교 택시 아저씨는 끊임없는 수행으로 이뤄진 결과였다.

“교도님 한 분 한 분이 다 잘 풀리셔서 교당에 나오는 도반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공부할 기사님들!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음 생에는 교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 오늘도 서울에 일원택시가 달린다.

 

7월 3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