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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일원의 향기_방학교당 유서윤 교도
[일원의 향기] 저는 풍금을 제일 좋아해요
2020. 07. 08 by 우형옥 기자

[한울안신문=우형옥]교당에 가면 하나씩은 있는 피아노. 기성교도라면 피아노 반주 또는 풍금 반주에 성가를 불렀던 추억이 한번쯤 있을 터. 그러나 성가 반주는 물론 고장 난 풍금을 수리하고, 미세하게 틀린 음을 잡아내 피아노를 조율한 기억이 있는 교도가 몇이나 될까? 국가기술자격 1급 피아노 조율사인 그는 방학교당 초창기 반주를 도맡아 법회를 돕고 지금은 피아노 조율이 필요한 교당을 찾아가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종합악기사 선일악기를 운영하는 방학교당 유서윤 교도(70)를 찾아갔다.

성실과 신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동생들과 상경해 우연히 악기점 점원으로 일하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에 ‘한 우물을 파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피아노 조율을 배우고 악기점을 열었어요.” 낙원상가 1층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가게는 1977년부터 시작된, 상가에서도 몇 없는 전통 있는 악기점이다. 같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며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많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원불교 교법 덕분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켜왔다.

‘선연을 만나려면 은혜를 발견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계가 올 때마다 감사생활을 한 지 수십 년. 코로나19로 가장 힘든 경영난을 겪고 있음에도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다. 이런 성실하고 꾸준한 모습에 손님들은 신뢰로 화답했다. “15~20년 전 이야기지만 예전에 거래하던 한 학교 서무과장이 그때 당시에도 천만 원이나 하던 야마하(YAMAHA) 피아노를 보지도 않고 사가셨어요. 아무리 오래 거래를 했어도 천만 원 짜리 물건을 사면서 보지도 않고 그냥 가져다 달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저를 믿어주신 거죠.” 교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돌아가신 고 정수연 교도는 그를 믿고 십여 년 전 천도재비 500만 원을 맡겼다. 돈을 잘 보관하고 있다 돌아가셨을 때 정성스럽게 치러드린 천도재는 그 자녀들을 감화시키기도 했다.

신심으로 갚는 보은미

그는 계룡시에 도곡선교소를 만들었던 이모 김공원 교도의 연원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도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 진짜 교도가 됐다고 생각한 것은 방학교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다. 우연히 풍금을 사러 들렀던 방학교당 오중원 초대교무의 권유로 교당에 다시 다니게 됐던 그는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의 천도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름 한 자 한 자를 부르는 교무님을 본 이후 교당의 주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매년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일정 금액 헌공금을 늘리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만원으로 시작했던 헌공금을 교당을 다닌 세월만큼 늘어나게 했다. 종로교당 건물 1층에 있는 가게 역시 교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장사가 어려울 때도 가게를 빼지 않고 관리비 한번 연체하지 않은 채 유지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 당시 보은미라고 작은 신발주머니 같은 자루에 밥 먹을 때마다 식구들 수대로 쌀을 한 숟가락씩 넣어서 한 달에 한 번 교당에 가져갔어요. 근데 그때 저희 집이 가난해서 그 한 자루를 못 채웠죠. 매번 미안해하며 슬그머니 교당 뒷자리에만 앉아 계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챙기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교도부회장과 교도회장으로 교당을 이끌고 현재 건축추진위원회 위원 대표를 맡아 큰 책임을 안고 있는 그는 신심과 공심으로 반절도 채우지 못했던 보은미를 수백 배로 갚아 나가고 있다.

앉으나 서나 교화 걱정

“앞으로는 특정 교도에게 의지하며 교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서로 합력해야죠. 단순하게 네 교당 내 교당을 동네로 구분 지을 게 아니라 교당별 특성화를 통해 지구 내 교당의 다양성을 갖춰야 합니다. 교당 건물을 지을 때도 재정을 자립할 방법을 먼저 구축하고 지어야죠.” 걱정 어린 말과 함께 더불어 7월 17일이면 방학교당 보은불사 기도가 300일째를 맞는다고 말하는 그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와 같았다. 엄한 표정으로 교화 제언을 말하던 그는 또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문화교화를 말한다. 교당에서 반주를 하며 성가 속 법문에 푹 빠진 그처럼, 어렵고 딱딱한 모습이 아닌 음악으로 교화에 접근한다면 자연스레 원불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저는 풍금을 제일 좋아해요. 풍금의 울림이 성가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리코더로 연주했던 성가도 반응이 좋았어요. 제 꿈은 법회 순회를 다니시는 법사님들 따라다니며 교무님들 법설도 듣고 악기 연주도 하는 특별한 법회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라며 악기를 든다. 가게 너머로 그의 꿈이 울려 퍼진다.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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