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여성에게는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
상태바
성공한 여성에게는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
  • 관리자
  • 승인 2018.06.18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마워요, 시네마 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KBS1 라디오 ‘박종훈의 경제쇼’ 연출

'당갈'

고마워요시네마.jpg

자식을 키우다보면 어디까지 이끌어주고 어디까지 자유롭게 해줘야하는지 늘 헷갈립니다.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해. 지금은 불만이 많아도 나중에 크면 부모에게 고마워할 거야”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고 “결국 본인이 원해야 끝까지 하는 거지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진정한 자신의 길이 아니다”라는 분도 계시죠.


척박했던 70년대에 클래식으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린 정 트리오나 피겨퀸 김연아 선수를 보면 부모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도 부모 성격 나름이어서 저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도영화 <당갈>을 보면서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역사가, 더 나아가 한 국가의 문화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또 한번 느꼈습니다. 실화인 이 영화는 아직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많은 나라의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겁니다.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금메달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하지만, 너무 절실하면 오히려 멀리 달아나는 것이 인생일까요? 그는 내리 딸만 넷을 낳고 맙니다. 낙담한 그에게 어느 날 번개처럼 환희가 꽂힙니다. 맏딸 기타와 둘째 바비타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래! 딸들에게 레슬링을 시키자!' 아들이든 딸이든 금메달만 따면 된다! 어찌 보면 진작 깨달아도 됐을법한 이야기지만 이곳은 인도입니다. 10대에 결혼해서 조용히 남편의 그늘에서 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인도에서 몸에 꽉 끼는 레슬링 복을 입고 거친 몸싸움을 하다니, 당장 아내가 반대하고 딸들은 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노골적이고요.


하지만 마하비르는 물러서지 않죠. 정말 아버지가 맞을까 싶을 만큼 가혹한 훈련이 이어집니다. 딸들도 만만치 않게 반항하지만 마하비르의 꿈은 단순히 올림픽 금메달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하비르는 수동적인 인도여성의 삶을 자기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며 “내 딸들은 성공해서 남편을 직접 고를 거다”라고 당당히 선언합니다.


이건 혁명에 가까운 발언이죠. 마하비르는 더 나아가 딸들에게 애국심을 늘 강조합니다. 개인의 삶을 공익적 삶으로 승화시킬 때 발휘되는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입니다. 성실하고 착한 딸들은 중간에 살짝 어긋나기도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꿈대로 금메달을 따내고 맙니다.


“성공한 딸에게는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처음 접하는 남자이고, 사회의 높은 벽을 상징합니다. 그 벽이 너무 높고 억압적이면 딸들은 자신들의 나무를 키워갈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격려와 전폭적 지지가 있다면 딸들은 사회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한 여성으로 쑥쑥 커갈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성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딸의 운명은 어떤 아버지를 만났느냐에 따라 100%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아직도 조혼과 지참금문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인도에서 마하비르와 같은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은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식을 키워본 입장에서는 아버지도 훌륭했지만 딸들은 더 훌륭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저희 부모님도 1960년대로서는 파격적으로 바느질이나 요리 잘하는 걸 원치 않으셨고 꼭 자격증을 따서 전문여성으로 살아라, 천경자 화백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멋진 여성이 되라고 늘 응원하고 후원해주셨지만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기타와 바비타가 안스러워서 훌쩍거리다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결국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부모가 정말 원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자식의 행복이란 것을요. 마하비르도 궁극적으로는 딸들의 행복만을 바랄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