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길에서 듣는 짜릿한 올드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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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길에서 듣는 짜릿한 올드 팝
  • 관리자
  • 승인 2018.11.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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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 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KBS1 라디오 ‘박종훈의 경제쇼’연출

이글스(Eagles)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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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여행을 떠나야죠. 모르는 여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낯선 곳 어디라도 다 아름다운 게 가을이니까요.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자가용 없이 산지 6개월, 저는 요즘 서울을 여행하는 중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는데 젊어서는 소중함을 몰라서, 나이 들어서는 자동차 창밖이 허락하는 풍경만 봐오다가 뚜벅이가 되고서야 서울의 곳곳을 종합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참 많이 변했더군요. 정말 넓더군요. 물론 아쉬운 점도 많이 보였습니다. 획일적인 건물, 단순하고 우울한 도시의 색감, 과도하게 큰 간판이 특히 거슬렸습니다. 자연이야 우리가 유럽에 뒤질게 뭐있습니까. 외국인들이 한결 같이 감탄하는 한강과 그 멋진 산들이 조화로운 이 서울을 이렇게밖에 가꾸지 못한 우리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런데 가을엔 이런 아쉬움조차 거의 다 사라집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가을하늘과 화려한 단풍, 가을 특유의 쌉싸름하고 청량한 공기가 모든 단점을 가리고도 남으니까요.


그래서 가을엔 어디든 떠나야합니다. 낯선 곳에서 'Hotel California(1976, Eagles)'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바로 영화가 되는 거죠.


'Hotel California', 전주만 들어도 살짝 소름이 돋을 만큼 섹시하고 드라마틱한 올드팝입니다. 선곡할 때마다 실패가 없는 곡이죠. 저는 가사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여기에 올리는 건 생략합니다. 우리가, 뭐, 가사를 알아서 팝송을 좋아하나요. 게다가 이 곡은 진짜 좀 난해합니다. 그렇지만 여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두운 사막 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우연하게 들른 'Hotel California'. 이곳이 천국이냐 지옥이냐 잠시 생각했고 이곳은 포근하고 끝내주는 곳이다 뭐 그런 내용인데요. 미국문화를 몰라도, 어두운 사막 위 고속도로를 생전 달려본 적이 없어도 이 노래를 들으면 어렴풋이 어떤 분위기일지 와닿습니다.


우리 세대는 사실, 팝송을 더 많이 듣고 자랐죠.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eley) 비지스( Bee Gees), 아바(ABBA), 스콜피온스(Scorpions), 엘튼 존(Elton John), 퀸(Queen), 올리비아 뉴튼존(Olivia Newton John), 산타나(Santana), 앤 머레이(Anne Muray), 카팬터스(Carpenters), 비틀즈(Beatles)...


일일이 다 쓸 수 없을 만큼 귀에 익은 올드팝은 지금도 제 정서의 7할을 차지합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올드팝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Hotel California'를 들을 때입니다. 특히 이 곡은 라이브버전을 꼭 추천합니다. 전주만 2분이 넘는데요, 그 부분이 아주 사람 심장을 쫄깃하게 합니다. 기타 선율이 뚝뚝뚝 끊기듯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서서히 감동의 열기가 차오르죠.


녹음 본에는 없는 묵직한 타악기에 얹어져 그 유명한 기타 전주가 시작되면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지는데요, 그 순간엔 나도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머리끝까지 짜릿해집니다. 수백 번도 더 들었을 'Hotel California'를 브라질 아파네마 해변에서 무명가수 연주로 들었던 추억도 잊을 수 없습니다. Eagles는 남성적 매력이 차고 넘치는 밴드지만 잔잔한 데스페라도(Desperado)를 비롯해 테이킷이지(take it easy), 뉴키즈인타운(new kid in town), 린아이즈(Lyin'eyes), 아이캔텔유와이(I can't tell you why)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옛날 것이 다 좋았다고 말하는 걸 경계해야하는 나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팝송은 올드팝입니다. 가을은 이렇게 골고루 멋을 좀 부려도 좋은 계절입니다. 선글라스는 가을 햇살에 더욱 멋스럽고 커피 향은 가을에 더 부드럽죠. 가죽 자켓도 가을을 위해 탄생했고 칼라 깃을 한껏 올려도 가을엔 용서가 됩니다. 오래전, 종로의 어느 카페에서 비엔나커피 한 잔과 신청곡으로 들었던 올드팝들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가을은 사람, 참, 미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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