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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일원의 향기┃돈암교당 정원주 교도
[일원의 향기] “지금 살아 있을 때 해보자”
2021. 07. 18 by 강법진 편집장


스물여덟 살에 입교해 16년간 아픈 줄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故 요산 정석인·돈암교당) 따라 원남교당에 갔다가 입교해 일반법회를 잘 다녔는데, 이듬해 돈암교당 신축이 완공되자 아버지와 함께 교당을 옮겼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정성스럽게 하는 성격이라 청년회 막내로서 법회와 청년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그해 덜컥 청년회장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른부터는 일반법회를 봐야 한다고 다시 일반교도로 월반해 지금까지 솔로로 젊은 ‘12단’을 이끄는 주역으로, 10년째 교화기획분과장을 이끄는 ‘돈암교당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원타원 정원주 교도다.


가장 행복한 시간 ‘법회’

평일에는 온통 직장(연천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팀장)에 정신을 쏟아붓고, 일요일에는 특별한 약속이 아니고서는 교당 일에만 전념한다는 그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법회시간’이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함께 법회 보러 가는 걸 좋아했어요. 어느새 습관이 돼 일요일이면 법회 보러 가는 게 당연해졌죠. 교당도 다른 사람들보다 한두 시간 더 일찍 와요. 미리미리 준비하고 법당에 앉아있으면 경종 소리, 성가 소리, 그날의 설법이 온통 제 것이 되니까요. 그 시간만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그의 천상락도 앗아갔다. 매주 법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에게 법회 참가자 발열체크 업무가 떨어진 것이다. 아쉽지만 그는 또 묵묵히 해낸다.

“지난해는 (법회중단이) 처음 겪는 일이라 혼돈의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올해는 법회를 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런데 또다시….” 최근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하면서 그를 만난 7월 11일(일)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7월의 마지막 대면법회 날이었다. 이날도 마지막까지 교당에 남은 건 그였다.

 

 

코로나 적중 ‘온라인 경전읽기’

코로나19 상황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대안을 마련한 건 교화기획분과였다. 그와 젊은 12단 단장 조상덕 교도가 머리를 맞대 고안해 낸 ‘온라인 교전읽기’가 코로나 시기에 적중했다. 시작은 이렇다. 돈암교당 잠자는 옛 청년 깨우기에 일등공신이었던 그와 조 단장이 단원들의 흔들리는 신앙심을 잡아주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단톡방에 조석심고 유무념 체크하기’를 시작했다. 유년회, 학생회, 청년회를 거쳐 돈독해진 도반들이 결혼과 육아, 직장을 이유로 일반법회를 나오지 않자 그가 정성스럽게 불공해 한 명 한 명 다시 교당으로 이끌어 남자 4단, 여자 12단과 13단을 만들었다. 어느덧 40대~50대가 되어버린 그들을 코로나로 인해 다시 잃을까 봐 온라인으로 계속 소통해 온 것이다.

온라인 유무념 공부가 어느 정도 성숙이 됐을 때, 그를 비롯한 교화기획분과에서 교도 전체를 대상으로 ‘온라인 경전 읽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경전 봉독 진도표를 만들어 미리 배포하고 단별로 매일 카카오톡 단톡방에 실행 여부를 유무념 체크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만났던 교도들이 매일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공부심도 깊어졌다.

“돈암교당은 확실히 저력이 있는 교당이에요. 역사와 전통이 있다 보니 화합도 잘하고 공부 열의도 강해요. 덕분에 수요공부방도 대면일 때보다 참여자가 더 많아졌어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숨은 실력자들이 많은 거죠.”
 

 

할 수 있을 때 하자

교화기획분과장 10년이면 내려놓을 때도 됐건만 이젠 교도들도 교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10년 전 건강을 자부했던 그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죽기로써 치료에 매달렸던 이유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교당에 다시 나가겠다’라는 일념이었다.

“제가 아픈 동안 부모님이 교당에 다녀오면 빈손으로 온 적이 없어요. 교도님들이 저 빨리 나으라고 몸에 좋은 것을 매주 챙겨 주셨어요.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죠. 8개월간 치료를 마치고 교당에 나갔더니 교무님이 분과장을 시켰어요. 그 순간 ‘지금 살아 있을 때 해보자’ ‘내가 받은 은혜를 갚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교도들의 염려와 돌봄 속에 그는 10년 만에 현재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회라는 말처럼, 그에게 ‘암’은 ‘큰 가르침’이었다. 아픔을 겪고 나서 그는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하자.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 만나는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자. 다만 너무 기대하지 말자.’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의 ‘여유’와 인생의 ‘가치’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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