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울안신문
뒤로가기
영화 속 마음공부
이미 지금 여기 존재하는 당신은 존귀하다
2022. 06. 23 by 박선국 문화평론가

 

춘희는 오늘도 전투를 벌이듯 무장을 하고 마늘을 열심히 깐다. 그 이유는 수술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텅 빈 큰집의 작은 다락방에 혼자 사는 그녀는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녀의 삶에서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과 대면하게 되고, 가슴 깊이 숨겨놓았던 과거의 상처를 상기하게 되는데…….

‘태어나기를 잘했어’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 춘희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판타지적 요소가 풍부한 치유 영화이자 성장 영화이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조용하면서도 매우 직설적이기에 때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의 유쾌함이 이를 반감시켜 준다. 스친 듯 던지는 짧은 대사 몇 마디는 많은 생각을 담아 관객을 호응하게 하고 위로를 전달하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한다. 마음과 몸에 상처 치유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벼운 듯 보이는 상황과 재치 있는 대사들로 마치 봄바람에 추운 겨울 눈이 녹아내리게 하듯 우리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어린 시절 양부모를 잃고 외삼촌 집에 더부살이를 시작한 춘희는 긴장하면(사실 언제나 긴장해 있는) 손발에 심하게 땀이 난다. 그녀는 가족들을 비롯한 선생, 친구 등 주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자신을 여기며, 마음을 감옥 속에 가두고 성인이 된 지금도 넓은 공간이 있음에도 꼭대기 다락방에서 지내고 있다. 어머니가 태어난 집이니 자신의 집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집 한구석에 세상과 떨어져 은둔해 살아가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는 상징적인 단어나 장소 등이 등장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Slug’는 등에 집이 없는 민달팽이로 연약한 몸을 세상에 드러낸 체 끈적끈적한 자취를 남기며 돌아다니는 생물이다. 다한증 병이 있고 정착할 집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남게 되는 그 흔적은 숨기고 싶은 고통이 드러나는 모습이라 하겠다. 벼락의 상징성 또한 크다. 춘희는 터널 앞에서 뜬금없이 벼락을 맞게 된다. 그날 이후 잊고 싶었던 어릴 적 춘희를 마주하게 된다. 어린 춘희는 풀어내야 하는 숙제 거리를 상징한다. 숨겨두고 회피하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벼락 맞는 모습으로 상징화한다. 다락방의 의미도 크다. 작지만 안에 있으면 편안하고 다양한 색과 빛으로 장식된 그 방은 겉으로 나타난 그녀의 단조로운 모습과는 대조되는 밝고 희망적인 내면의 모습을 상징한다.

결국, 그녀는 그런 자신의 내면을 회복한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춘희가 어릴 적의 고통을 잘 풀어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미래의 자신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또한, 관객들에게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외롭다고 생각되었던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스스로 치유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임을 자각하라는 메시지이다.

극락은 환한 하나의 빛으로만 반짝이는 세상이라기보다 개성이라는 다양한 색깔들이 빛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6월 24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