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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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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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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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면-원불교사드철폐운동의 의미(원익선).jpg

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Ⅰ)

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Ⅱ)

3대 지도자였던 대산 김대거 또한 이삼학수행을 “수덕지선(修德至善)=계(戒)=대소사간(大小事間)에 늘 바른 취사를 해서 대취사력을 얻는다. 동(動)=밖으로 정의를 행하여 모든 덕을 쌓는 공부(외행정의-外行正義), 정(靜)=안으로 계율을 지켜서 모든 악을 끊는 공부(내수계율-內修戒律)(「대산종사법문집」제1집, 정전대의 9.삼학)”에서 같은 뜻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원불교의 정의론은 일원상 진리를 믿고 수행하는 최종결과를 보여준다. 인과적으로 말한다면, 인(因)으로써의 진리가 정의라고 하는 과(果)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해석으로 정산 송규가 언급한 다음의 법문에 잘 나타나있다. 무시선의 강령 중 일심과 정의의 관계에 제자의 질문에 대해 “일심이 동하면 정의가 되고, 잡념이 동하면 불의가 되나니라(「정산종사법어」경의편 30장)”고 한 것이다. 일상의 삶 전체는 신앙과 수행에 의해 나타나는 정의에 의해 완성되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 정의론의 현대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정의론을 잠시 알아보자면, 무엇보다도 분배의 정의에 관해서 평등을 주장한 사람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로 사회적 평등을 정의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와는 다르게,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처럼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제한을 주장한 것처럼 개인의 자유에 비중을 두는 학자계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자를 절충한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이 있다. 롤즈는 그의 『정의론』에서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다”라는 정의를 내려 자유와 평등을 현실적 중용(中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들 사상가들은 자유와 평등을 정의의 핵심 가치로 보고, 사회역사적인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인류의 최종가치로 삼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동양 전통에도 정의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신, 제가, 치국평천하 또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주장하는 유교나 도교의 경우가 그것이다. 특히 유교의 경우, 인의(仁義)야말로 정의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주역』, 『논어』, 『맹자』에서강조하는4덕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근원한 인의는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정의라고 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의의 경우, 공의(公義)를 강조하는 동양의 전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동양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사회적 정의를 강조해온 전통이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의 정의론 또한 이러한 동서양 양자의 정의에도 일정 부분 소통된다고 할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을 믿는 이유로 불법을 시대에 적응케 하여 가정, 사회, 국가의 일이 잘 되도록하게 하고자 하며, 불교의 허무적멸은 『주역』의 무극과 태극, 공자의 인, 자사(子思)의 미발지중(未發之中), 대학의 명명덕(明明德)과 그 근본에서 만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의 허무적멸로“도의 체를 삼고, 인·의·예·지로 도의 용을 삼아서 인간 만사에 풀어 쓸 줄 알아야 원만한 대도(「대종경」변의품 20장)”라고 한다. 여기서 허무적멸은 불교의 열반(涅槃, Nirvana)으로써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고 본다. 불교를 기반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포용하여 체용의 관계로 삼고, 인·의·예·지의 사단(四端)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태산의 제자인 정산 또한 성인과 범부의 성격을 맹자가 주장하듯이 의(義)와 이(利)에 빗대어 설명한다. 그는 “범부들은 작은 이익을 구하다가 죄를 범하여 도리어 해를 얻나니, 참된 이익은 오직 정의에 입각하고 대의에 맞아야 얻어지나니라(「정산종사법어」무본편 39장)”라고 하여 성인의 삶은 정의와 대의에 있음을 설파한다. 그리고 도가(道家) 즉, 종교의 신자들에 대해“그 행동이 정의의 길을 밟고 있는가 못하는가로 인격을 판단하나니라(「정산종사법어」근실편 12장)”라고 주장한다. 원불교의 종교로서의 현실적 가치는 이처럼 동양적 정의론에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원불교의 교의 형성 배경이 동아시아 라고 하는 역사문화적 전통과도 관계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원불교 교의 형성과정에서 유학자인 정산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태산의 깨달음을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적 토양에 착근시키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최근까지 논의되고 있는 서양의 정의론과의 관계에서는 불법연구회의 활동 그자체와도 깊이 연동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의 교명은 저축조합(1917), 불법연구회 기성조합(佛法硏究會期成組合)(1919), 불법연구회(1924)로 변천한다. 원불교의 종교적 원형은 조합이었다. 그리고 추후에 종교적인 세계로 확장된다. 궁촌벽지에서 간척사업을 통해 농민공동체운동을 시작하여 종교공동체로 발돋움했다고 할 수 있다. 분배적 정의를 몸소 조합원들과 실천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양의 정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정치(精緻)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불법연구회의 개교의 의미를 집약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유럽식 사회주의 운동중 하나의 부류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생시몽,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 혹은 크로포토킨의 상호부조론적인 세계가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교식 사회주의가 근대적인 면모를 보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식민지 아래 제한된 자유의 상황 하에 저항적 민족주의를 지향하고자 했던 불교개혁론자들의 경우와도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모든 개인의 사회적인 배경과 조건들이 공동체 속에서는 제외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가운데 불법의 정의(正義)에 입각한 현대적 종교를 지향했다는 점도 오늘날 논의되는 정의론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깨달음과 자비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기반 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약자나 주변부의 소외자들이 이 불법연구회라는 공동체 속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은 현대 정의론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종교적 자유를 토대로 여전히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불교의 향후 종교적인 행보가 결국은 사회적 정의론의 또 다른 대안이 될 것인지는 더욱 주목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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