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과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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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과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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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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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27)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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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염불법의 요지」에서 “대범, 염불이라 함은 천만 가지로 흩어진 정신을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법이요, 순역(順逆)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법”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염불은 일념(一念)과 안정을 목적으로, 염불의 문구인 '나무아미타불'을 이어서 부르는 공부법입니다.


그런데「정기훈련법」에서는 “염불은 우리의 지정한 주문(呪文) 한 귀를 연하여 부르게 함이니, 이는 천지 만엽으로 흩어진 정신을 주문 한 귀에 집주하되 천념 만념을 오직 일념으로 만들기 위함이요”라고 정의합니다.


「정기훈련법」의 한 과목으로써의 염불은 「염불법」에서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법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법 중에서 일념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기훈련법의 염불은 정할 때의 훈련이기에 「염불법」중에서 일념 양성에 한정한 것입니다. 순역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염불 공부는 상시의 방
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기훈련의 염불은 '나무아미타불'의 문구뿐만 아니라 지정한 주문까지 통용합니다. 그러니까 영주, 청정주 등의 주문도 정기훈련 때는 염불 문구로 적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의 염(念)은'읊을'염입니다. 어떻게 읊느냐 하면 과거도 붙지 않고 미래도 당겨오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미래가 관여된 과거와 미래 선상의 지금이 아닙니다. 염(念)은 과거와 미래가 단절된 지금(今)마음(心)입니다.


「염불법의 요지」의 '아미타불'은 우리의 청정 자성(自性)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은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것으로 청정한 자성에 드는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염송에 집중하여 분별이 뚝 끊어진 청정한 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에 집주(集注)하여 그 집주하는 마음바탕에 그치면 청정한 자성에 든 것입니다. 이 자리는 원래부터 여여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래 깨어있는 자리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염하여바로 청정한 이 자리에 접속하는 것입니다.

육근이 무사하여 정할 때는 '나무아미타불'염송에 집주하여 일념에 드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열된 모든 마음이 바로 한 자리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직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흩어져도 그 자리는 흩어질 수 없는 청정 일념이라는 것을 직시하여 그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정신을 흩어지게 하는 경계에 '나무아미타불'이란 주제에 집중하여 염송 일념에 머무르고 머무르면 일체의 경계가 다 떨어져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오직 청정 일념만이 있을 뿐입니다. 설사 분별이 일어나도 그 분별이 청정 일념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확연이 자각하게 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나무아미타불'에 집주하여 청정 일념으로 돌이키면 그만입니다.


또한 육근이 유사한 순역 경계에도 '나무아미타불'염송 한방으로 청정 일념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순역 경계를 따라 마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이 흔들리는 마음을 '나무아미타불'염송으로 심성(心性) 원래(元來)에 반조하는 것입니다. 반조만 하면 그 자리는 원래 순역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안락한 자리입니다. 경계를 따라 아무리 흔들려도, 흔들리는 중에 흔들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반조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됩니다. 마치 오뚜기처럼,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있는 격입니다. 중심이 있기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경계에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정전』 「염불법의 요지」의 결론은 “염불하는 사람이 먼저 이 이치를 알아서 생멸이 없는 각자의 마음에 근본하고 거래가 없는 한 생각을 대중하여, 천만 가지로 흩어지는 정신을 오직 미타 일념에 그치며 순역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무위 안락의 지경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곧 참다운 염불의 공부니라.”라고 마무리합니다.

참다운 염불 공부는 경계가 있든 없든, 동하든 정하든 나무아미타불 염송을 챙기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청정하고 광명한 자성불입니다. 자성불은 생기고 사라지는 생멸의 존재가 아니며, 거래에 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가도 그 자리요 와도 그 자리이며, 생해도 멸해도 청정 여여한 자리입니다. 결국 염불은 나무아미타불에 대중하여 한마음인 자성 일념에 그치고, 순역경계에 항상 청정 안락한 자성자리에 머물도록 하는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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