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종사 수필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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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 수필법설
  • 전재만
  • 승인 2002.0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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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방의 불교를 우리의 불교로


정산 송규종사 1900-1962


외방의 불교를 우리의 불교로
「인도나 지나(支那)의 한자 숙어로 된 불교의 경전을 조선어로 쉽게 풀이하고 또한 조선 풍속에 맞게 만들자는 것이니라.」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불교를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하여 불법(佛法)의 대의를 보급하자는 것이니라.」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사중은(四重恩)을 연마하고 단련하여 작업취사의 힘을 얻자는 거인바, 단련이라 하는 것은 수련이라고도 하나니, 불식지공(不息之功)으로 힘써 나아가는 것을 말하나니라.
부처님께서 6년 동안 설산(雪山)에서 연마(鍊磨)를 하셨고, 공자님께서 십유오이우학(十有吾以于學)하고 “나를 두 해만 더하게 하여 준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중은(四重恩)을 단련하라는 말은 사은을 알아서 보은을 실지(實地)에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나투라는 것이니라.」

과거의 예법을 현재의 예법으로
「예법(禮法)이라 하는 것은 성경(誠敬)으로써 격(格)에 맞게 행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예(禮)는 천리지절문(天理之節文)이요, 인사지의칙(人事之儀則)이라 하였나니, 우주에는 일월이 왕래하고 사시가 순환하여 광채(光彩)가 있듯이 사람으로 태어나 예(禮)가 있어야 광채(光彩)가 드러나고 최령(最靈)한 인생의 가치(價値)가 있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천리(天理)의 절차(節次)와 광채(光彩)를 본받아 인사(人事)의 원칙(原則)을 밝힌 것이 예법(禮法)이니라.
그러나 제성(諸聖)들이 예법(禮法)을 마련하실 때 그 시대에는 맞게 내셨으나 시대가 변하여 감에 따라 시대와 인심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나니, 곧 예(禮)의 체(體)는 성경(誠敬)이라 성경의 본래 정신만은 불변이나 그것을 현실에 쓸 때에는 시대와 인심 등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이치의 당연함이니라.
또 가령 개인주의 본위로 해서 예법을 내 놓으면 그대로 돌아가고, 공심을 본위로 해서 예법을 마련하면 그 방향으로 또 돌아가게 될 것이라, 불교 개선(改善)의 장(章)에 대종사께서 예법을 넣으신 것은 불교를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하여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법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며, 또한 불교혁신을 이 예법으로써 해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불교는 형식불공(形式佛供)이 유행하여 제사(祭祀) 때 음식을 차려 놓고 귀신(鬼神)이 먹는다는 등, 부모 형제 친척 등에게 지은 죄(罪)를 등상불(等像佛)에게 빌고 있는가 하면, 일반의 신앙도 불교와 단련하여 무정한 목석(木石)이나 기괴한 물건 등에 자손을 잉태하게 해 달라고 빌고 신수를 빌며,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비는 등 온갖 미신적인 신앙행위가 있나니라.
그 뿐만이 아니라 번잡(煩雜)한 예법은 수없이 많나니, 상례(常例) 하나를 지내는 데에 있어서도 삼년상(三年喪)이라든지, 49일상 등으로 여러 가지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나니라.
그러나 예법의 강령(綱領)을 말하면 관혼상제(冠婚喪祭)는 곧 공경(恭敬) 즉 성경(誠敬)의 도(道)로써 행하는 것이니라.
아울러 도(道)를 행(行)하는 것이 예(禮)라 할 수 있나니, 예(禮)라는 것은 상대처(相對處)가 있을 때 하는 것이요, 도(道)는 잠간도 떠날 수 없는 것이며 홀로 있을 때라든지, 저 사막을 홀로 걷게 될 때에도 도(道)는 떠날 수 없지마는 예(禮)는 차라리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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