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50년대 모습 네팔이야기 - 1
상태바
우리 나라 50년대 모습 네팔이야기 - 1
  • 전재만
  • 승인 2002.01.1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상 교무


새해가 밝았다
즈믄 해가 시작된다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난리를 치던 때가 벌써 1년을 넘어 다시 한해가 밝았다. 하지만 네팔은 아직 9월..
그들에게는 전 세계가 들썩거리는 새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팔, 조금은 낯선 땅
우리에겐 히말라야를 가지고 있는 나라 정도로, 룸비니가 있는 나라 정도로 다가오는 나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린 룸비니가 인도에 있는 줄 알았다.
나도 네팔에 가기 전에는 룸비니가 네팔이 아닌 인도에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그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네팔은 한국 동란때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16개국중 한 나라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모습은 우리나라 50년대의 모습이란다. 우리도 그랬을까.
외국인들이 보이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손들이 나오는지. 눈만 커다란, 깡마른 모습의 솔기조차도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옷을 걸치고 맨발에 까만 손, 사탕하나, 단돈 1루피를 달라며 따라다니는 아이들. 만약 그 아이들에게 뭔가를 준다면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휩싸여 버리고 하늘에서, 혹은 땅에서도 손이 솟아 나온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우린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처음 수도인 카트만두 공항에 내려 들어선 거리의 모습은 폭격으로 망가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폭격은 받은 적도 없었다는데...거리엔 너무도 여유 있게 다니는 검은 소들, 마치 들개를 보는 듯한 거리의 개떼, 염소들, 오리들, 전후세대로 자란 나에게는 그저 말로만 듣던 모습들이었다.
잘 닦인 아스팔트보다는 발을 온통 다 버릴 정도의 진흙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리들. 꽃제비라 했던가,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그 곁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 난방시설이 없는 집들은 한방에서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곳,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어 태어나면서 자신의 신분이 정해지고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의 신분을 알아버리는 나라, 일부다처제로 한 남편에 두 세 명은 보통이고 많으면 여섯까지 아내를 거느린다. 여자들은 결혼을 할 때 지참금을 가지고 가야하고 결혼해서는 죽도록 일을 한다. 남자들은 술 먹고 노름하고 노는 것이 일인데, 여인들은 가정살림에 자녀 양육에 농사일까지 허리가 휘도록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17살 정도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기 시작하는 여인들, 그래서일까 여인들의 한은 더욱 깊기만 하다.
자녀의 교육은 멀고 먼 이야기일 뿐 지금 당장 한 푼의 돈이 더 급해 학교를 보내는 것보다는 일터로 어린 자녀들을 내 보내곤 한다.
네팔의 거의 모든 곳에서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은 외국인의 눈엔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런 이유로 외국 관광객들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네팔은 어린 노동자을 착취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