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로 다시 태어난 조부
상태바
손자로 다시 태어난 조부
  • 전재만
  • 승인 2002.02.14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나라 굴지의 기업체 회장이었던 임모씨의 실화다.
내가 화해교당 교무로 있을 때 소성교당 교도였던 황건익씨가 찾아와 “나는 늙어서 못 볼 테니 선생은 젊어서 꼭 두고 보라”는 부탁을 하며 들려 준 이야기다.
임모씨 할아버지는 부안의 3천석꾼이었다. 그런데 임모씨 할아버지가 마을에 나갔다가 해산한 산모가 먹을 것도 없는데다 추운 방에서 땔감도 없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쌀 세 말과 미역 한 통을 주리라 결심하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얼마 지나 가난한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 비용이 없어 송장을 수숫대로 감싸 지고 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예의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는 가난한 집에 초상이 나면 관 하나와 짚신 한 죽(한 죽은 10켤레)을 주리라 했다.
소문이 퍼져 가난한 집에서 아이를 낳거나 초상이 나면 으레 쌀과 미역, 짚신을 얻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니 3천석 재산도 점점 기울었다. 임모씨 할아버지는 정읍으로 이사해 좀 살다 죽었는데, 빚쟁이들이 몰려들었다.
임모씨의 아버지는 자기가 빚을 갚아 주겠다 약속하고 모시베 행상으로 빚을 갚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임모씨의 어머니가 꿈을 꾸니 임모씨의 할아버지가 자기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이다. 그녀는 꿈이지만 하도 민망스러워 “아버님, 왜 이러세요” 하며 뒤를 돌아보니 임모씨의 할아버지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 태몽의 소문은 “시아버지가 죽어 아이로 탁태되었다”고 동네에 퍼졌다. 이렇게 낳은 아이가 임모씨인데 황건익씨는 “지금 임씨가 가난한 무명 청년이지만 할아버지가 죽어 임씨로 태어났으니 지은 바에 따라 성공할 것입니다” 하는 이야기였다.
6·25전쟁 직후 한청천씨(화해교당 교도회장)에게 임씨의 뒷이야기를 물었더니 “부산에서 무슨 음식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어렵게 산다”고 한다. 또 얼마 지나 물어보니 창고를 빌려 큰 가마솥 10여개 걸어놓고 무엇을 만든다고 하더니 몇 년만에 임씨는 한국 굴지의 회사로 성공했고 현재도 번창하고 있다.
이 예화에서 할아버지가 선을 지어서 손자가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임씨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것이다. 그 집 손자로 태어나서 말이다.
인과는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 즉 자업자득이다. 마치 자기가 맛있는 밥을 먹어야 자기의 배가 부른 것과 같다. 밥 먹는 사람 따로 있고 배 부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내가 선해야 선업이 쌓여지고 내가 너그러워야 남의 잘못도 용서되어서 상생의 업이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이다.
내 집 앞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빗자루를 들고 쓸어야 하며, 내 마음이 선량해지려면 바로 내 마음을 착하게 다듬어야 한다. 내가 지혜로워지려면 아무리 가까운 부모라도 대신 못해 주는 것이니 내가 연구하고 연마해야 한다.
양산 김중묵 종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