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제일 불행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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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제일 불행한 여인
  • 전재만
  • 승인 2002.04.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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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김중묵 종사


지난호 이어> 그 날부터 바라문의 딸은 다시 정처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흘러다니다가 그녀는 도가 높은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스님은 바라문의 딸을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떠났다.
하루 종일 걸어, 밤중도 훨씬 넘어 조각달이 수풀 사이로 비쳐들 무렵, 산봉우리 근처에 자리한 암자에 당도했다. 그 암자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키가 작달막한 노스님이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맞아 주었다. 그 노스님은 당대에 최고로 도가 높은 스님이었다. 그녀는 그 노스님 밑에서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삼생(三生)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됨으로써,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된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정강이와 아래턱을 덜덜덜 떨었다.
바라문 딸의 전생은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전생에도 어느 부잣집 아들과 결혼했는데,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후처를 얻게 되었으며, 그 후처가 아들을 낳자 그녀는 시기와 질투로 눈이 뒤집혔다. 남편의 사랑은 이미 후처에게만 쏠렸으며, 앞으로 그 많은 재산마저 후처의 아들에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본처인 그녀는 후처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잠든 아이의 정수리에 실바늘을 꽂아 두었다. 그 날부터 후처의 아들은 실바늘이 핏줄을 타고 돌아 젖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울어대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러자 시부모, 남편, 후처와 친척들은 본처를 의심하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처럼 후처의 아들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했다고요? 그렇다면 저 하늘로부터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다음 생이 있어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내 남편은 독사에게 물려 죽을 것이며, 내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늑대떼에 뜯어 먹힐 것이며, 내 부모는 불에 타서 죽을 것이며, 내가 만나는 남자마다 비명횡사할 것입니다.”
이렇듯 극도의 말로 변명함으로써 그녀는 전생에서 가족 친지들의 의심과 추궁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한 번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걸 몰랐다.
이 이야기는 「현우인연경」에 나온 설화다. 한번 지은 업은 당대뿐 아니라 영생을 두고 받게 된다.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을 수도 있으며, 금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을 수도 있고 영생을 두고 과보를 받는 업도 있다. 이렇듯 한층 깊은 인과의 세계를 아는 사람들은 더욱 맑은 눈과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될 것이며, 현생을 진지하게 영위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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