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아들이 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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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 아들이 된 어머니
  • 전재만
  • 승인 2002.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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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김중묵 종사


어느 원불교 교당에 갔더니 서너 살 먹은 어린애를 보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어머니 후신’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이치야 그런 것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음계 소식을 누설하는 것이 되어 못쓰는 법이니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항의를 하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랬다
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어머니는 부잣집 마나님이었다. 그리고 그 별
호가 여걸이었다. 왜냐하면 그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다
른 사람도 못하는데 그 여자가 들어 모두 해결하곤 했다.
남자들의 싸움, 이웃간의 시비, 재산 관계 다툼 등을 사리에
맞게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니 그 마을의 판사요, 검사요, 변
호사가 된 것이다.
이 여걸은 불교 신자였다. 한번은 며느리가 과거불교는 그 교
리가 낡고 폐단이 많으니 불교를 그만두고 원불교에 다니자
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너희들이 다니는 것
은 좋다. 그러나 나는 관여치 마라. 왜냐하면 내가 가버리면
내가 지어 놓은 절과 그 곳 스님은 어찌 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 여걸은 재산도 있고 해서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 30리 떨
어진 곳에 절을 하나 짓고, 그 절에 식량을 대주는 등 불사를
하고 있던 처지라 그것을 끊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절에 보시를 하는데 쌀도 가마니로 보내고 돈도
세지 않고 잡히는 대로 집어 주며 부처님께 짓는 복은 이해
타산을 생각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마음 씀씀이가 그랬기 때
문에 여걸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가난한 이발사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어머
니가 가끔 하는 말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니 도와 주라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여걸 아주머니가 죽었다. 그러자 자녀 7
명이 기독교식이나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서로 다투
다가 적당한 장례를 마치고는 제사는 사십구재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지은 절에서 6재까지 지내고 종재는
원불교식으로 지내기로 했다. 어머니가 살아 생전에 불교를
다녔으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6·7재를 원불교에서
지내고 종재도 원불교식으로 다 마쳤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원불교 다니는 딸의 꿈에 어머니가 나
타나서 하는 말이 내가 너희들이 천도재를 잘 지내준 덕으로
이제 인도수생을 하게 되었다. 사람 몸을 받아 내가 좋아하던
그 이발사 댁으로 가려 하니 그리 알라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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