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를 믿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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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를 믿어야 하나
  • 전재만
  • 승인 2002.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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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이경식 교도


내 집무실 앞 화단에는 세 그루의 목련과 두 그루의 목백일홍이 있습니다.목련 세 그루는 가까운 거리에 가지런히 서 있고 목백일홍은 긴 화단의 동서 양 끝에 한 그루씩 무슨 랜드마크처럼 서 있습니다. 봄이 되면 목련이 새하얗게 피고 여름이면 목백일홍이 꽃분홍색으로 피는 것을 보는 것이 내게는 작지 않은 기쁨입니다.
그런데 봄에 피는 목련 세 그루는 동시에 피는 것이 아니라
두 그루는 좀 일찍 피고 그 사이에 있는 한 그루는 해마다
일주일 이상 늦게 피는 것입니다. 같은 종류, 같은 토양인데
말입니다. 이상하다 싶어 눈여겨보니 늦게 피는 목련 옆에는
키 큰 향나무 한 그루가 있어 햇볕을 상당히 가리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목백일홍도 같은 시기에 사다 심어 키운 것인
데 동쪽 놈은 늘 화사한 꽃을 피우는데 서쪽 것은 꽃송이도
적고 보기에도 초라해 보이는 것이 역시 이상했습니다. 가만
히 눈여겨보니 토양의 문제인 듯합니다. 동쪽 화단에는 거무
스레한 거름진 흙이 있는 반면 서쪽 화단에는 겉보기에도 메
말라 보이는 누런 황토가 그냥 드러나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같은 종자라고 같은 꽃을 보이
지 않듯이, 같은 원인(씨앗)이 동일한 결과(열매)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과 열매 사이에 있는 햇볕이나 토양이 이른바
인연(緣)입니다. 우리는 인과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연을 종
종 잊고 지냅니다. 그래서 내가 뿌린 씨앗과 남이 뿌린 씨앗
이 같다는 것만으로 열매도 같아야 한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기름진 밭에 씨를 뿌려 김매고 거름주고 병충해도 예방하며
정성들여 키운 사람과, 아무데나 씨만 삐쭉 뿌려두고 거름도
안 주고 김도 안 매고 병충해 예방도 안 한 사람이 같은 곡
식을 거둔다면 이것이 공정한 인과이겠습니까.
인과는 원인과 결과가 기계적으로 연결되는 물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한 알의 씨앗이 열매가 되기까지는 숱한 변수가 숨
어 있는 것입니다. 같은 원인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원인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
다. 그만큼 역동적인 것이 인과율입니다. 이런 역동적인 인과
법칙을 설명하는 원리가 연기론이니 이것이 불법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대종사님은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에서 강이 약으로
혹은 약이 강으로 변하는 이치와,「고락에 대한 법문」에서
고가 낙으로 혹은 낙이 고로 변하는 이치를 말씀했습니다만,
이렇게 강약, 고락이 뒤바뀌는 것도 인과의 역동성입니다. 그
리고 「일원상 법어」에서는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진급
으로 혹은 강급으로,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변함을
설파하셨습니다.
인과 보응의 법설을 단지 윤리적 방편이라거나 권선징악을
홍보하기 위한 훈화쯤으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바 죄값을 치르기 싫어서 부정하
려 하고, 어떤 사람은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불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인과법을
맘껏 이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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