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빌려온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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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빌려온 돈
  • 전재만
  • 승인 2002.07.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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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김중묵 종사
전남 영광에 가면 ‘관철이 마당’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실속없이 넓고 크기만한 마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말 왜정초에 영광 법성에 관철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3천석이나 받는 부자였지만 어찌나 성질이 고약하고 욕심이 많은지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정도 욕심이 많은가 하면 가을에 소작인들이 폐농하여 소작료를 조금 감하자고 하면 “다른 사람은 농사를 잘 지었는데 왜 자네만 농사를 못 지어 가지고 그러는가. 그렇게 농사 지으려면 논을 내놓아!”라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소작인들이 논을 빼앗길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참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풍구쟁이를 시켜 곡식을 풍구질하는데 쭉정이 하나 없이 깨끗하게 풍구질하게 하니 소작인들이 한 섬을 가져 가면 한두 말은 축나는 일이 예사였다. 그러니 억울한 소작인들이 그를 욕하기를 “죽어서 구렁이나 되어라” “지옥에나 떨어져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날, 관철이가 시감을 앓게 되었다. 시감이란 감기 비슷한 증세로 열이 오르는 병이다.
가까운 한약방에 가서 한약을 지어 달여 먹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한의사가 감기인 줄 알고 한약에 그만 인삼을 넣었기 때문이다. 열병에 인삼이 들어가면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
이렇게 죽은 관철이가 청의동자의 안내를 받아 어디로 가게 되었다. 한참 가니, 시퍼런 강물이 있고 그 강물 위에 외나무다리가 걸려 있었다. 동자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그 다리를 건너니 거기가 저승이라 했다. 저승에 도착한 관철이 동자의 뒤를 따라가보니 그 곳이 바로 재판정이었다.
재판정 안에는 염라대왕이 위의를 갖추고 앉아 있고 그 주위에 수많은 판관들이 앉아 있었다. 관철을 본 염라대왕이 “너는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왜 왔느냐? 어서 나갔다가 8년 후에 오너라”하는 것이다. 그러자 관철이 나오려고 생각하니 집에서 가지고 간 여비를 다 써버리고 없었다. 그것을 걱정하자, 염라대왕은 “네 창고에 가면 거기에 돈이 있을 테니 거기 가서 가져가라”고 했다.
안내를 받아 창고에 가 보니 커다란 창고 앞에 ‘관철의 창고’라 적혀 있었다. ‘아, 여기에도 내 창고가 있구나’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창고문을 열어 보니 그 안이 텅 비어 있고 오직 주춧돌 3개와 볏짚 다섯 다발이 덩그렇게 놓여 있지 아니한가.
주춧돌 3개는 사촌이 집지을 때 좀 도와 달라고 해 다른 것은 아까워서 주지 못하고 겨우 주춧돌 3개 주었던 것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요, 볏짚 다섯 다발은 이웃집 가난한 여자가 어린애를 낳고 굶주리고 있을 때 다른 것은 아까워 주지 못하고 나무하라고 주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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