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빌려온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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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빌려온 돈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7.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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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김중묵 종사


<지난호에 이어> 관철은 본인의 창고에 저축해 놓은 돈이 없어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창고에서 돈을 빌려 가기로 하고 옆창고로 갔다. 거기에는 ‘덕진의 창고’라 적혀 있는데, 그 안에는 금 은 돈 식량 등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부자이기에 이토록 돈이 많을까 생각하며 노자를 빌려 가지고 돌아오다 지난번 건너던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자기 집에 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관철은 죽은 지 이틀만에 살아난 것이다. 지난 일을 생각해 보니 꿈도 같고 도깨비에게 홀
린 것 같기도 해 이상했으나, 너무나 역력하고 신기해 관철은 덕진이라는 사람을 찾아보기
로 마음먹었다. 여러 곳을 헤매며 덕진이를 찾았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어느 산 모퉁이를 지나는데 해는 지고 배는 고파 오고 다리는 아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쉴 곳을 찾았다. 마침 주막이 있어 술과 음식을 청하는데 주인이 “덕진아, 손
님 왔다” 하고 덕진이를 부르지 아니한가. 귀가 번쩍하여 덕진이를 보니 지지리 못생긴 처
녀였다. 너무 못났기 때문에 시집갈 생각도 단념하고 먼 일가뻘이 되는 이 주막에서 밥도
하고 심부름도 하며 살고 있었다.
이윽고 밥상 차려 오는 것을 보니 깨끗하고 정성스럽기 그지없었다. 식사를 끝낸 관철은 덕
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덕진이는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고 구정물에 들어간 밥풀, 무
조각, 나물 건더기 등을 조리에 받아서 꽉 짜더니 그것을 버리지 않고 자기 밥그릇에 넣어
비벼 먹는 것이었다.
얼마가 지나니 늦게 길을 가던 손님들이 “덕진이 있소” 하면서 찾아오는데 마치 친오빠나
친동생과 같이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이 주막은 돈 3전을 내면 밥
을 큰 그릇으로 한 그릇 주고, 돈 2전을 내면 작은 그릇에 파는데 손님 가운데 키가 크고
건장한데 돈이 없어 2전짜리 밥을 달라고 하니 덕진이는 조금 전에 남겨 두었던 자기 밥을
더 담아 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벗어놓은 감발(양말이 없던 때라 발을 감는
베)을 깨끗하게 빨아서 새벽길 떠나는 손님들이 신고 갈 수 있도록 해주고 밤늦게 찾아오는
손님도 반갑게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관철은 속으로 크게 깨달았다. 세상에 나는 3천석이나 되는 부자인데도 지금껏
누구 밥 한 그릇 주어 본 일도 없고 돈 한 푼 준 일도 없으며 남 못할 일, 언짢은 짓만 하
면서 살았다. 그런데 덕진이는 저토록 알뜰하게 복을 지으면서 살고 있으니 저승의 창고에
돈이 가득할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이렇게 생각한 관철은 덕진이에게 저승 이야기를 하면서 덕진이 창고에서 빌려왔던 돈을 내
놓았다. 그러나 덕진이는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돈을 주
지 못하고 그 돈에 얼마를 더 보태어 ‘덕진교’라고 하는 다리를 놓아 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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