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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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여 안녕~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7.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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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자"이문교당


신광자"이문교당


안경이여 ! 안녕~3년 전부터 미루어 오던 백내장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들어서니, 카페처럼 아늑한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 70대 전후의 노인들이었다. 아들이 하나면 골방에서 죽고 둘이면 왔다 갔다 하다가 객사하고, 딸이 하나면 안방에서 죽고 둘이면 비행기 타고 여행하다가 추락사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더니 이 많은 환자 보호자들이 하나 같이 딸들인 것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풍속도를 알만하다. 조금 전까지도 내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는데 나에게만 일찍 찾아 온 듯한 백내장에 화가 났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내 신체의 일부분이 제거되고 인공 수정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다. 얼마 전에 친구가 자궁암 조기 진단을 받고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이 ‘요즈음 사람들 쉽게 죽지 않습니다’며 농담 섞인 격려에 미소가 떠오르며 병을 이겨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한다.
나의 주치의도 어느새 내 기분을 알아 차렸는지 “축하합니다. 앞으로는 안경을 벗어도 잘 보일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
확신에 찬 음성으로 희망적인 위로를 해 준다. 그러니까 꼭 45년 동안 사용해 온, 어쩌면 내 신체의 일부분이나 다름없었던 안경이지만 벗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홀가분하고 앞으로의 생활이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수술 다음날부터 안경 없이 TV를 보고, 모든 사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디 그 뿐인가, 때맞춰 열린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단이 4강에 진출하기까지?
‘오~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붉은 악마들의 세세한 표정까지도 따라 잡으며 안방에서 그들과 함께 열광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우리 태극 전사들이 바다 위에 물개가 솟아오르듯 뛰어 올라 머리로 받아 슈팅하는 것은 가히 예술이고, 100분 이상 뛰고 넘어지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더욱더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투지의 눈빛을 보면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 받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오히려 일찍 찾아 온 백내장에 감사하고 친구들의 안부 전화에는 서슴없이 효자 백내장이라고 농담할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이 기쁨도 잠시, 아직 적응이 덜된 탓인지 TV를 오래 보면 눈이 뻑뻑하고, 밝은 햇볕이 눈부셔서 육십 평생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쓰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런 데로 괜찮은데, 수술 전에는 잘 보이던 글씨가 눈앞에 하얀 망사 천을 드리운 듯 희미해서 익숙하지 못한 돋보기를 써야만 하는 불편이 생겼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길들여진 내 시력의 정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안경을 벗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들 마저도 ‘너의 이미지가 아니다’고 한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에 앉을 때 그리고 열심히 청소를 했건만 뒤돌아서면 세간사리들마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에 여간 신경이 거슬리지 않는다. 수술전이 그리워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감과 불행감이 수시로 교차되었다. 한 때 얻은 줄 알고 좋아하였는데 알고 보니 결국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월드컵에서 마치 우리가 처음에는 그저 16강에만 들어갔으면 했는데...... 8강에 이어 4강까지 들어가는 신화를 만들고 보니 우승을 넘보았다.
우방인 터키에게 월드컵 사상 게임 시작 후 최단 시간에 어이없게 선제골을 주고도 패하리라는 생각보다는 승리를 예감하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내 시력도 희미하게 보았던 원거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으니 돋보기의 불편쯤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다.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면 내 인생의 경영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오히려 이 마당에 의술의 발달에 고마워하며 인간 복제까지 운운하고 있으니 머지 않아 안경이나 돋보기 따위는 옛 이야기가 될 것을 기대하며 마음 밭이나 푸르게 가꾸어 보자.
안경이여!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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