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고 새 우는 날 죽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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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고 새 우는 날 죽겠노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7.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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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김중묵 종사


나주에 살았던 박문왕 선생은 생사자유(生死自由)하신 분이다.
이 사람은 사보사라는 절의 신도회장이었다. 가난한데도 신심이 투철하고 덕망이 높았는데, 이 분이 「원불교」 교전을 보고는 탄복하고 원불교에 입교하여 열심히 수양하였다. 박 선생은 가끔 그 곳 교무에게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럴 때면 집이나 보아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그 분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교당에 다니며 공부하고 수양하고 교당일 보아 주며 살고 있는데, 한번은 자기 생일날 아들 딸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제 내가 갈 때가 거의 다 되었다, 이제 내가 죽을 때가 되었으니 어느 때 가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부인이 옆에 있다 망령기 들었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박 선생은 이왕이면 치상 치르기 좋고 자식 편하게 한다면서,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인 내년 4월 자기 생일날에 죽겠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4월, 그 분 생일날 모든 자녀 친척이 모였다. 농담인지 알았지만 평소 실없는 말을 하는 분이 아니라서 죽겠다고 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여 모여든 것이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까지 죽지 않으니 자녀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 오늘 돌아가신다더니 어찌된 일이십니까?” 하고 웃으면서 묻자, “글쎄다. 너희들을 보니 즐겁고 좋으니 좀 미룰란다” 하면서 어서들 돌아가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식구들이 한바탕 웃고는 헤어져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가서 보니 결가부좌를 하고 아버지가 단정하게 앉아 열반에 들었더라는 것이다. 좌탈입망을 한 것이다.
이런 분이 도인이 아니고 누가 도인이냐면서 나주교당 김창만 교도회장은 한탄을 하였다. 신문에 나고 세상이 떠들썩할 일인데 이 분이 원체 가난하고 알려져 있지 않아 그런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실지 그 곳에 가 보았다. 그 분이 살던 집은 산기슭에 초라하게 지은 집이었으며, 너무 가난하여 신문지로 문을 바르고 살았다. 마침 그 분의 며느리가 있어 얼마나 고생이 많느냐고 했더니 무슨 말씀이냐면서 자기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모두 법설일 뿐 아니라 어떻게 자기를 아껴 주고 귀여워해 주던지 참으로 행복했었다는 얘기다.
수양을 많이 하고 영생을 알아 해탈을 얻은 도인이 되면 생사를 임의로 하고, 죄복을 자유로 하며, 육도윤회의 수레바퀴도 벗어나 대자유를 얻게 되고, 진리와 둘이 아닌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경지가 된 도인을 대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위의 일화는 생사를 자유로 했던 도인의 이야기이다. 해탈관이란 죽음에 다달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마음이다. 영생을 알면 해탈이 된다. 죽음에 이르러 두려워하고 허무를 느끼고 안절부절하는 것은 모두 해탈을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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