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나의 새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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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나의 새삶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8.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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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이문교당
달라지는 나의 새 삶
이문교당 김상은
새 삶이란 새롭게 거듭남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저 자신만이 새롭게 거듭난다고 새 삶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 자신이 새롭게 거듭남으로써 제 주위의 한 사람이라도 새롭게 거듭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새 삶일 것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경계를 당하기도 하였고 또한 그러한 경계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저 자신 뿐만 아니라 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저와 제 주변에 조금씩이지만 새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2년 6개월 전 중학교 1학년 담임에 특별한 두 학생을 맡게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한 학생은 최다혜라고 뇌성마비 중증 1급 학생으로 양쪽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학생이였습니다. 다혜어머님께서 학교측에 봉사정신이 강한 좋은 담임이 다혜를 맡게 해달라고 열 번도 넘게 부탁을 하셨는데 학교측에서 그 부탁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저희 반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좋은 담임선생님이 다혜를 맡게 되었다고 하시며 저에게 미안하고 어렵겠지만 잘 돌보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혜는 말도 잘 못하고 침도 많이 흘리고 감기가 걸리면 코도 많이 흘리고 손이 불편하여 점심밥 먹기, 노트 필기도 힘든 학생이라 주위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다혜 근처에서는 밥 먹기도 싫어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하고 하여 점심시간마다 밥먹이고 화장실 데리고 가는 것은 담임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대종사님께서 보내주신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행하였습니다. 1학년말 2학년 담임을 누가 할 것인가? 교장 선생님께서 선생님은 1년 동안 너무 힘들었으니 2학년 담임은 다른 선생님이 하게 해 주겠다 하셨는데 여러 선생님들을 면담하셨지만 선뜻 하겠다는 희망자가 없어 교장선생님께서 다혜 어머니께 담임을 할 선생님이 없으니 전학을 가라고 하시자 다혜 어머니께서 울면서 매달리시어 하는 수없이 다혜는 3년 동안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혜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체험 학습도 같이 가고 벚꽃 축제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하니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더러워서 다혜를 어떻게 돌보느냐고 하시지만 저는 종교의 힘으로 합니다하고 얘기합니다. 물론 저도 어떨때는 비위가 상해 점심을 못 먹기도 하지만 우리 다혜는 저의 부처님입니다.
또 한 학생은 김신화라고 장래희망이 전무출신인데 신화는 공부가 전교에서 5등이고 피아노, 지휘, 노래, 무용 등 전과목에 우수하고 고집이 세고 통솔력도 있어 반에서 반장입니다. 인물이 예쁘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라 신화가 교무님이 되면 제가 제일 존경하는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님 같은 분이 되겠다 생각하고 신화가 교무님이라는 큰 뜻을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늘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신화를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전무출신이 되겠다는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듯 보여 신화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새 삶’에 데리고 와서 우산님께 인사시키니 우산님께서 신화에게 좋은 법설을 많이 해주셔서 신화가 다시 교무님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대종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우산님께 신화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신화가 교무님이 되는 날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줄 생각입니다.
또한 저 자신에게도 어려운 경계가 있었습니다. 2년 전 추석 이틀 전 대전 시댁에 가다가 조치원즘에서 무단횡단하시는 할머미를 피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아들과 저는 타박상만 입었고 뒷자리에 앉은 남편은 팔, 다리만 부러진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계속해서 ‘당신이 괜찮아 다행이다’ 하시다가 119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무 준비없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저는 장례를 치르면서도 비몽사몽으로 헤매다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도 하고, 울고, 잠도 못자는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사는 일이 너무 억울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저의 남편 우경원씨는 교당에서 사회보는 일도 무척 좋아하셨고, 집에서는 새벽마다 기도, 독경생활을 하셨는데 그 독경소리가 성우의 목소리처럼 듣기 좋았습니다. 남편의 소원은 늘 원불교 회장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에 35년 동안 기독교에 다녔기 때문에 몸은 원불교에 있지만 늘 기독교를 그리워하며 원불교 공부에는 관심도 없었고 원불교에 대해서는 불평뿐이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교당에 가지만 교무님의 법설이 안 좋다는 둥 교도들이 이상하다는 둥 돈을 자꾸 내라고 한다는 둥 되는 일이 없다는 둥 늘 원망 생활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나도 미래를 준비하자는 생각에 변산에서 하는 7박 8일의 승산 종사님 훈련에 참석하였고 남편이 하던 원불교 일을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 같아서 그 일이 너무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또, 남편 용돈을 드린다고 생각하고 남편 이름으로 내는 유지비나 교당에 내는 돈들도 기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음공부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오른팔이 너무 아퍼 물리치료나 침, 지압같은 것을 해봐도 차도가 없고 X-ray를 찍어봐도 이상이 없다는데 팔이 너무 아파 들지도 못하고, 몸도 점점 쇠약해지고 58Kg 나가던 체중이 49Kg밖에 안나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러다가 죽을 것 같으니 병가를 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관절로 유명하다는 상계백병원에 가니 병명은 우습게도 우울증이었습니다.
팔도 우울증으로 아프다는 얘기를 들어보니 우울증은 무서운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졸리고 몽롱하기만 할 뿐이어서 저는 병은 제 마음공부로 고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어느 교도가 얘기하는 새삶회를 원기 87년 2월 16일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우산님께서 인류의 마음병과 새삶 마음공부라는 제목으로 법설을 하셨습니다. 특히, 심화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우리는 진리에 눈을 뜨는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 내가 심화로 인하여 우울증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저는 심화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학교에서나 교당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창조시키고 개발시키는데 힘써 우울증을 많이 고치고 팔도 많이 나았습니다. 학교에서는 항상 학생들에게 평상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하고, 교당에서는 사회와 회계를 보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생활과 공부를 하니 제 마음도 밝아지고 언제, 어디서나 경계에 휘말리지 않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원불교는 저에게 희망이고 삶입니다. 특히 새 삶의 마음공부는 말그대로 저에게 새삶을 주었습니다. 저도 남은 삶을 이웃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원불교인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좌산종법사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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