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 "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개척교화 보고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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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화 "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개척교화 보고서 3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9.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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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면서


한화중교무


러시아 우스리스크 셀호즈 아카데미아 대학의 초청장을 받고 비자를 신청하는 동안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보낼 짐을 정리하였다.
주로 고려인에게 나누어줄 헌옷, 이불, 담요 등과 대학에서 우리에게 강의실을 준다고하여 한국문화센터처럼 운영할 계획으로 고가구와 옛날 물건들을 수집하여 포장을 하였다.
이 모든 것을 강남교당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함께 해주셨다. 컨테이너로 짐을 싣기 전까지 몇 개월 동안 강남교당 현관에는 짐이 쌓여 가고 나중에는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우리 아파트를 들어서면 외국이란 느낌을 들지 않는 것도 다 컨테이너로 실어온 한국의 물건들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느낄 때면 여름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짐을 싸는데 도와주신 강남교당 교무님, 교도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박청수교무님께서 고려인을 찾아다니려면 필요할 것이라며 당신이 쓰시던 승용차까지 선뜻 내주셨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컨테이너로 부치고, 컨테이너에 싣지 못하는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등의 식료품을 가지고 드디어 출국을 하였다.
그러나 아파트 수리가 다 끝나지 않아 열흘정도를 호텔에 머무르다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우리는 고쳐지지 않은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바닥이며 벽이며 전기공사 그리고 집을 뜯은 후에 나온 쓰레기들.....
출국할 때 우리는 컨테이너로 짐을 부쳤기 때문에 입었던 여름 정복과 여름옷 한벌 정도만 들고 왔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미 추위가 오고 있었고 온돌이란 것도 없고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에 들어간 사교무와 나는 작업하다 남은 스치로폴과 김선생이란 분이 집에서 쓰던 것을 가져다준 메트리스를 깔고 다행히 봉공회에서 고려인을 위해 주고 간 담요를 얻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꼭 붙어서 잠을 자야만 했다.
김선각 교도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실정도 모르는 우리가 걱정이 되어 함께 일하고 있는 중국교포(조선족)인 박선자씨를 보내주었다. 벽지 바르는 일등 집안 정리를 같이하면서 필요한 씽크대, 전기렌즈, 침대를 싸게 사기 위해 중고가구점과 우스리스크 시내의 가구점들을 거의 돌아보았다.
사기만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달을 해주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씽크대도 조립전의 물품들을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고 가버린다. 아파트 5층까지 올려달라고 하면 따로 배달비를 요구한다. 조립을 해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곳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5층까지 낑낑대며 우리가 직접 짐을 올리고 조립도 하며 개척이란 말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아파트가 정리가 다 끝나가도록 컨테이너는 도착하지 않았다. 컨테이너에 실은 책이며 옷이며 이불 등이 이삿짐으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면이 문제였다. 비싸게 관세를 물고 겨우 겨우 컨테이너를 찾았고, 로지나라는 마을에 있는 대한주택협회의 창고에 짐을 내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만 아파트로 옮겼다. 그날 저녁 짐을 풀면서 사교무의 입가에는 베실베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꼭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흥부가 박을 탈 때의 심정처럼 우리는 상자 하나 하나 뜯을 때마다 무엇이 나올 것인가 기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 옷 속에 이불 속에 그릇 등 깨질만한 것들을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새벽 4시까지 꼬박 밤을 새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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