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 "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개척교화 보고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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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화 "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개척교화 보고서 8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10.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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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비자기간이 끝나고


한화중 교무


어제부터 내린 눈이 오늘 아침에는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영하 30-40℃이하로 떨어진 겨울이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하는 것도 좋으리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눈의 요정이 살 것 같은 눈 덮힌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간간이 지나는 간이역에서 내려 러시아 아주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구운 감자며 빵 등을 사서 먹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또 가다가가다가 지치면 이르크츠쿠에서 내려 세상에서 제일 큰 바이칼호수도 구경하고(아주 추운 겨울 호수가 얼 때에는 표지판을 세워 차가 다닐 수 있게 도로가 생긴다고 하니...) 몽고의 울란우데에서도 잠깐 쉬어가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달리는 기차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쉬지 않고 달려 7박8일이 걸린다고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눈 덮힌 아침 잠깐 꿈을 꾸어본다.
1년의 비자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3년의 계약기간으로 자매 결연을 맺은 셀호즈 아카데미 대학과 초청장 재발급 문제로 우리는 다시 러시아의 정서에 적응해야 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또 우리가 비자해결을 위해 아쉬운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측과 작은 문제가 있었으나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였다. 그러나 외국인관련법이 더 까다롭게 바뀌는 바람에 초청장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력이 없으면 타력의 힘을 빌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타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러시아에서 1년을 살고 정리하면서 종교법인을 내는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한국에 나가기 전에 변호사를 만나 의뢰를 하였다. 1년 만에 그리운 고국 땅을 밟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리움의 대상이었음을 실감하였다. 보기 전에는 그리운 줄을 몰랐더니 또 한국을 떠나면 그리움도 따라서 잊혀지겠지?
우리는 대학생 2명과 함께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갔다. 한 명은 고려인이고 교도 자녀였고, 또 한 명은 러시아인으로서 대학에서 우리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들과 함께 원불교 국제부에서 실시하는 외국인선방에 참석하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비자를 받아 다시 우스리스크로 되돌아왔다. 한국에서 우스리스크에 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행기로 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배를 타고 오는 방법이다. 배를 타고 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경비가 적게들고 나름의 멋이 있다.
배는 저녁에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므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에서 보는 별자리가 또 색다르다.
한국에 다녀온 첫날밤에 우리는 밤손님을 맞을 뻔했다. 다행히 잠귀가 밝은 사진원교무가 누군가 문을 따려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한국에서 올 때 챙겨온 것 중에 하나가 현관문 열쇠였다. 그러니 그들은 열쇠를 따는 것에 실패를 하였고, 우리가 사는 곳이 5층이었으므로 그들은(젊은 청년3명)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급해진 우리는 우선 불이란 불은 다 켰고 한참 있으려니까 그들이 다시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한달 동안 빈집이었기에 아마 그 날 밤도 빈집이라고 생각하고 온 것 같았다. 반응이 늦은 나는 그들이 가고 난 뒤에야 떨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4층의 안전한 집으로 이사를 하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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