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性理)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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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性理)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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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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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이현도 원로법사
기산 이현도 법사는 퇴임후에도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후학을 깨우치고 있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성리공부의 방향에 대해서 한울안독자들과 같이 공부해보자고 청하셨다. 성리공부는 계속 연재될 예정이며, 독자들의 질문에도 답할 예정이다. 많은 공부인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불교성리와 원불교성리
「소리없는 소리」, 「염화미소」도 원불교 성리, 대종사님 정신에의해서 손을 댄 것이죠. 감히 불교의 성리를 함부로 손을 못대거든요. 대종사님의 깨달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죠. 또 성리의 본질, 핵심을 썼죠.
이런 것이 우리 교도님들이 잘 안보는 것 같아요. 성리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성리를 직접 파려는 사람이 드물어요. 성리는 원리로 들어가면 너무 어려워서 우리는 감히 손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안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나 성리는 불교나 다른 곳에 가면 굉장히 의미를 둡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는 사람, 성리 입장에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깊이 팝니다.
대종사님은 종합 종합, 우주 원리에 의한 종합의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후천 도수, 낮 도수에 새회상을 열으시려고 주세성자로 나오셨습니다.
대종사님 이전의 과거는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무엇이 주장이 되냐면, 힘이라는 것이 주장이 돼죠. 힘을 갖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다보니 국가와 국가끼리 세계끼리 전쟁을 일으키죠. 밤은 어두우니까 남은 안보여요. 그러나 자기는 알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중심이예요. 그러다 보니 투쟁이 있었고 전쟁도 있었고 모략도 있었고 그랬거든요. 학문적으로는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었지만, 그것은 전체가 아니고 밤에 달이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이 세상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지, 전체는 아니에요, 전체는 힘이 지배를 했지요. 학문을 해도, 학문이 깊어가면 그것이 힘이고 그것이 세상을 지배했죠. 이제 태양의 밝은 시대가 오니까. 이제 남도 보이죠, 자기도 보이고, 그러니 이제 ‘아하! 나만 잘 살면안되겠구나, 남도 잘 살아야, 남이 길이 열려야 내 길이 열리겠구나’ 알게 된단말이죠. 우주의 진리를 향해서 하나가 되어가는 거예요. 과거시대는 의식주가 본위가 되었지만, 내 몸이 이루어질 때에는 내 몸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주 진리의 조화와 작용과 위력에 의해서 우주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도 하나이기 때문에 우주의 조화에 의해 내 육신이나 내 마음을 쓰는 것이 하나의 기운으로 나와 더불어 우주가 내가 된단 말이죠.

성리에서본 대종사
가령 대종사님께서 진리를 대각한 것 자체가 대종사님께서 깨닫기 전에는 ‘내가 무엇일까’해서 입정에 들고 마침내 대각을 이루시고 보니 우주에 갊아있는 진리가 다 대종사님의 소유가 되었거든요. 물리적인 것, 형상적인 것까지 대종사님의 소유가 되었단 말이에요. 왜그러냐면, 대종사님은 진리를 깨쳤기 때문에 진리가 대종사님의 마음이예요. 또 진리로써 이루어진 이 우주도 대종사님 마음 속에서 나온거예요. 대종사님의 색신(色身)은 이 우주자체가 다 대종사님의 몸이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성리로 보면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도 다 거기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으로써 일원상의 진리와 사은사요가 거기서 나오고 신앙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깨달음이고 우주 전체가 대종사님의 소유입니다. 그러한 어른이 나오지 않고는 이 시대가 새로운 시대, 열린 시대, 하나로 이루어지는 시대는 못만들어져요. 성리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돼요. 대종사님은 깨달음을 이루셨고, 우주 전체가 대종사님이기 때문에 막힐 것이 없어요. 전체가 대종사님 그대로예요. 진리가 대종사님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불교계는 말하자면, 불교와 원불교가 둘이 아니예요. 또 기독교와도 둘이 아니예요. 유교도 마찬가진데, 들어가서 보기만 보면 하나예요. 불교도 성리로 보면 내가 만들었어요. 대종사님과 불교의 성리가 다른게 뭐냐면, 불교의 성리는 과거에 깨달음을 본위로 한 거예요. 수행해서 공부해서 화두 걸고 선을 닦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80%를 차지 했어요. 이후 문제는 시대적인 차원에서 구분이 있거든요. 과거의 불교는 어두운 시대이기 때문에 우주의 주인이 되는 데까지 가는 성자가 많이는 안나왔어요. 그러나 대종사님 회상은 양시대이기 때문에 무시선 무처선, 처처불상 사사불공도 대종사님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어요.
원불교가 이렇게 놓고 보면 대종사님 신앙과 진리신앙이기 때문에 그 경지를 얻고 보면, 색신으로는 대종사님과 내가 다르지만, 나도 일원의 진리를 깨닫고 보면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니면, 대종사님만 우주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나도 우주의 주인이 된다는 거죠.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거예요. 범법자 취급하고 말아요. 이것이 기독교의 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산봉우리 정상까지 가면 다 보이는데, 중턱까지 가면 다 볼 수 없다는 거죠.

예수님은 진정한 성자
예수님은 그렇지 않은데, 예수님과 같은 경지의 성자가 안나왔어요. 예수님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 예수님은 그것을 알았어요. 예수님은 신의 계시를 받고 3년밖에 안됐거든요. 좀더 계셨더라면, 제자들을 당신 수준까지 뽑아 올리셨을 거예요. 당신은 알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조금 불운했어요.
기독교의 교법이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내놓은 거 아니거든요. 밑에서 결집한 것이거든요. 예수님은 틀림없이 성자예요. 예수님이 성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표현만 ‘신의 계시다’ ‘하나님이다’ 이렇게 구분을 지어서 할 뿐이지, 제자들이 아직 이 세상에 상근기로써 신의 경지까지 되질 수 있는 경지까지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만 표현한거죠. 당신은 속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증거는 뭐냐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 당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구제하는 것은 성자가 아니면 안되요.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거예요. 원불교는 진리를 깨달아서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차이가 있지요. 성불제중도 이론적으로는 같은데, 과거시대에 있기 때문에 실행이 안되요. 원불교는 대소유무 시비이해(大小有無 是非利害)로 건설하는 거죠.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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