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휴암 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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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 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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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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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사상(截斷思想)호대 불락혼침(不落昏沈)을 위지좌(謂之坐)요
온갖 생각을 끊고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좌라하고
일체 번뇌망상(煩惱妄想)을 끊되 혼침(昏沈)에 떨어지지 말라. 산란(散亂)을 반연(攀緣)하는 것은 사상(思想)이요, 잠에 기울어져서 무기공망(無記空妄)에 떨어지는 것은 혼침(昏沈)에 기울어지는 것이며, 일월행사간(日月行事間)에 일체 시비(是非)를 알지 못하고 우치한 것은 혼침이요, 또는 자기 시비를 모르면서 남의 시비를 잘 알아서 분별사량(分別思量)이 많은 것은 사상에 기울어진 것이니라.
그것은 나라는 즉 개인으로 인하여 계교심(計較心)이 많기 때문에 증오에 끌려서 분명한 처리가 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일체의 사량계교(分別思量)를 끊고 원만구족(圓滿具足)함으로써 체(體)를 삼는 공부가 사상을 끊는 것이요, 그 심경 그대로 공(空)을 위하여는 일체 분별을 놓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심경(心境)으로 인물을 개선(改選)하고 공적(公的) 시비이해(是非利害)를 가리는 것이 혼침(昏沈)에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라, 이것이 좌(坐), 곧 체(體)이니라.
재욕무욕(在欲無欲)하고 거진출진(居塵出塵)을 위지선(謂之禪)이며
욕심경계에 있으되 욕심이 없고 티끌 세상에 살되 티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세간(世間)의 물욕(物慾)에 처해서 일체 만물을 대하되 청정무애(淸淨無碍)한 심경의 그 마음은 결코 옮기지 않나니, 그러므로 일체행(一切行), 일체사(一切事)를 치연히 작용하되 항상 착(着)이 없고 끌리는 바가 없이 임의용지(任意用之)를 하게 되나니라.
또한 연꽃이 더러운 못에서 근원하였지마는 그 꽃은 출진(出塵)을 해서 만고에 빛나는 연꽃이 되는 것 같이, 우리도 비록 티끌 세상에서 생활을 할지라도 더러운 티끌에 물들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아서 마음은 항상 청정무애(淸淨無碍)한 극락미(極樂味)를 맛보는 것이 선이니라.
외불방입(外不放入)하고 내불방출(內不放出)을 위지좌(謂之坐)요
바깥 경계에 안으로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안 마음이 바깥 경계로 나가지도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선(禪)이 없는 보통 사람들의 심경이란 바깥 경계를 따라 견물생심(見物生心)으로 마음이 동하게 되나니 혹 역경(逆境), 혹 난경(難境), 혹 순경(順境)을 보고 접응하는대로 마음에 경계가 되어 흔들리게 되나니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좋은 물건이 있으면 그에 마음이 동하고 좋은 소리가 있으면 또한 그에 마음이 흔들리는 까닭에 그러므로 먼저 필요치 않은 외경(外境)은 삼가서 일심공부를 쌓아 가면 시일이 오래되고 공부가 순숙 되어 마침내는 천만경계(千萬境界) 백천사(百千事)가 밖에 있다할지라도 밖에서 내심의 경계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라. 또한 공부를 잘 하면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산란심(散亂心)이 점점 제거되어 안으로 놓아도 또한 나아가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내경(內境)을 만들어 진심(嗔心)을 내서 불안을 만들고, 탐심(貪心)을 일으켜서 욕심(慾心)을 못 이기며, 스스로 원망을 해서 개인으로부터 국가 세계를 혼란하게 하고, 국가 세계를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무량한 죄악을 짓나니, 결국 악도에 들어가는 첫 길이 되나니라.
수양을 많이 한 공부인은 항상 동정간(動靜間)에 마음이 청정(淸淨)해서 일이 없을 때에는 자성에 주해서 천만번뇌(千萬煩惱)를 자유자재하고, 일이 있을 때에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행(行)으로써 법문에 어그러짐이 없는 행(行)을 하나니, 그래서 진묵스님이 시장 보시듯이 천만경계와 백천사에 내외(內外)가 없이 일여(一如)하며, 또한 마음을 그대로 두어도 망상(妄想)이 없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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