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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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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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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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타원 박청수 교무
아직 나라 밖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무렵인 1986년, 나는 처음으로 인도에 갔었다. 늦은 밤 뭄바이(옛 봄베이)에 도착했다. 짧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판치카니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어슴푸레한 새벽에 호텔을 나섰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차창 밖을 열심히 내다보았다.
어둠이 가시면서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거리에 놓여 있는 하얗고 긴 자루 같은 것들이었다. 왜 인도 사람들은 저런 것들을 길가에 내어놓았을까?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날이 점점 밝아지면서 그 길고 하얀 자루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이상하게 여긴 나는, 또 그런 물체가 있는가 하고 유심히 살폈다.
날이 훨씬 밝았을 때 그 하얀 자루 속에서 사람이 기어 나왔다. 나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1월은 인도의 겨울이고 간밤에 담요 한 장을 덮고 자면서 추워서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났던 생각이 났다. 냉기가 올라오는 땅바닥에서 홑이불 하나를 달랑 뒤집어쓰고 어떻게 잠을 잤을까? 왜 저들은 집에서 자지 않고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일까? 그들은 말 그대로 노숙자들이었다.
도로변에 어설프게 솥단지를 걸고 무엇인가를 끓이며 올망졸망한 짐들과 함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저들은 집이 없는 유랑의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빛과 공기가 통할 것 같지 않은 얼기설기한 움막에서 사람이 기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지구촌엔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길을 걸어다니는 많은 인도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고, 그들의 발바닥은 두꺼운 가죽처럼 보였다. 뭄바이는 역사가 오래된 인도의 큰 도시 중의 하나라지만 바로 그 도시 한 켠에는 최악의 빈곤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발길은 갠지스강에 이르렀다. 힌두교 신자들은 성욕(聖浴)을 하기 위해 털옷을 벗어놓고 차가운 겨울 강물에 주저없이 몸을 담갔다. 그들은 해뜨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합장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 강물 속의 또 다른 사람들은 양치질을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그릇을 닦고 있었다. 힌두교인들은 바로 그 강물을 떠서 경건한 자세로 마시기도 했다. 그들은 갠지스 강기슭에서 방금 시신을 태운 잿물과 바라나슈 하수구의 생활하수와 짐승들의 배설물이 함께 흘러들어온 더러운 강물에 몸을 씻고, 그 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한 힌두교 신자에게 저런 오물들이 들어가는 강물이 더럽지 않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그런 오물들이 더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갠지스강은 정화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더러운 것이 일단 갠지스강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깨끗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갠지스 강물은 늘 맑고 아무리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타지마할 등 더 많은 유적지를 둘러보았지만 인도에서 받은 가장 큰 충격은 역시 그들의 가난이었다. 인도인의 가난은 마치 내 온몸에 딱 달라붙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설산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큰 열정을 바칠 수 있었던 것도 인도의 첫 여행에서 느꼈던 그 가난이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이상은 세계일보(11.2)에 20회로 연재가 시작되는 박청수 교무의 삶을 저자의 허락하에 그대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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