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행복 - 봉사인생 40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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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행복 - 봉사인생 40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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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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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교무 " 강남교당
옴마실라 호텔 침대에 깔린 풀먹인 새하얀 옥양목은 유난히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옛스러워 보이는 가구들이 전혀 낯설지 않아 나의 유년기 고향 집을 연상케 했다. 열린 창문 밖으로는 히말라야 산들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쪽빛 하늘의 창공이 한껏 드높아 보였다. 잠시 자리에 누워 보니 방 밑으로는 히말라야 계곡 물이 흐르는지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쉼없이 들려왔다. 참으로 아늑하고 그윽한 곳에 홀로 있는 기쁨이 고여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환영식이 열린다는 한 사원으로 갔다. 사원의 첫인상은 우선 정결하지 않았다. 라다크라는 지역이 춥고 물이 귀해서 청소를 잘 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모여 있는 라다크 사람들의 의상도 모두 회색빛이거나 검은 빛깔로 아예 때 타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없이 선량해 보이고, 그 얼굴이 순진무구해 보였다. 사원에서는 전통 차반에 차와 비스킷을 차려놓고 간단한 환영식이 열렸다. 상가세나 스님은 그들의 환영사를 우리에게 영어로 통역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라다크 말로 통역했다. 환영식이 끝난 다음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또 다른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안내되어 간 곳에는 울긋불긋한 천막을 쳐놓고 만국기처럼 보이는 불교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필경 무슨 경사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도 갓처럼 키가 큰 모자를 쓴 여인들이 종이꽃을 들고 서 있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다. 특히 남성들의 피부는 검게 그을어 보였고 강렬한 자외선 때문인지 모두 색안경을 끼고 있어 태양과 가장 가까운 동네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 라다크 사부 마을에서는 매우 역사적이고 뜻 깊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위산 아래, 마치 달의 표면을 연상케 하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벌판에서는 태국의 술락씨, 네덜란드의 아난다 스님, 대만의 밍광 스님 등 우리 일행들은 여기저기 기초석이 마련된 자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했다. ‘이 기숙사의 기초석은 한국의 서울에 있는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에 의해 놓여졌다. 1991년 6월 13일 오후 4시’라고 쓰여진 기념표석 앞에서 나는 기공식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발밑 아래로 보이는 기념표석 때문에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고, 또 부담스러웠다. 기공식을 하는 동안, 남인도 뱅갈로르에서 만났던 히말라야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년들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만약 이곳에 학교가 세워지기만 하면 그 소년들은 너무 일찍 먼 유학길을 떠나지 않아도 되겠지. 어린이들이야 차라리 멋모르고 떠나가겠지만 10여년 동안이나 못 볼 것을 알면서도 그 어린 자식을 품 밖으로 내놓는 어버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정말 이곳에 학교가 생기면 어린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사랑받으며 공부할 수 있을 테니 참으로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는 날을 앞당겨 생각하니 라다크의 희망 찬 미래가 환한 햇살처럼 비쳐 왔다. 그 환한 햇살은 나의 가슴속 깊은 곳까지도 비추었다.
히말라야 설산 라다크의 밝은 미래를 기약하는 기숙학교와 국제선센터의 기공식을 마친 그날 밤 큰 축제가 벌어졌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무희들이 파란 터키석이 촘촘히 박힌 장식물을 머리 위에서부터 등뒤로 흘러내리도록 치장을 하고 북과 피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들은 남녀가 함께 춤을 추었다.
춤사위는 매우 느리고 단조로웠다. 깜장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힌 찬란한 별들이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 밤, 우리도 그 춤판에 끼어들었다. 흐릿한 불빛 사이로 웃음 짓는 무희들의 미소에 정이 흘렀다. 나도 무희들의 비단 끈을 잡고 함께 춤을 추었다. 별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는 듯 지구촌의 오지 히말라야 깊은 산속 라다크에서는 밤을 지새울 듯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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